체코전 승리로 싸늘한 여론을 단숨에 뒤집을 순 없지만, 홍명보 감독은 12년 전과는 분명히 다름을 증명하고 있다 [과달라하라 IN SEGYE]

[과달라하라=남정훈 기자]이제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긴 하다. 체코전 승리로 선임 과정에서의 불공정 논란 등으로 인한 싸늘한 여론이 단번에 뒤집히는 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체코전 승리는 홍명보 감독이 숱한 비판 속에서도 밀어붙인 스리백 전술과 고지대 적응을 위한 철저한 준비, 경기 내에서의 과감한 결단 등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A조 최강이라 평가받는 멕시코를 상대로도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면 등돌린 팬심과 여론을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12일(현지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베이스캠프 훈련장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대표팀은 전날 체코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오현규와 황인범의 골로 2-1 승리를 거뒀다. 뉴시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의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체코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시종일관 체코를 압도하다 후반 14분 롱 스로인에 이은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에게 헤더로 일격을 맞으며 패색이 짙어지는 듯 했지만, 홍명보호의 저력은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 내내 안정된 탈압박과 패스로 공격을 이끌던 이강인의 침투 패스를 받은 황인범이 후반 22분 상대 골키퍼와 수비를 제치는 환상적인 접기에 이은 센스있는 칩샷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뉴스1
11일(현지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황인범이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1-1 동점이 된 이후 후반 24분, 홍명보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간판스타인 손흥민을 벤치로 불러이들이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대신 투입한 오현규가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손흥민 감독의 용단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후반 35분 백승호의 원터치 침투 패스를 받아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황인범이 문전을 쇄도하던 오현규에게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오현규는 이를 받아 넣으며 역전골을 일궈냈다. 이후 몇 차례 위기를 김승규의 신들린 선방으로 막아낸 한국은 2-1로 승리하며 2010 남아공 이후 16년 만에 조별리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조 3위까지 32강 진출이 가능하기에 체코전 승리로 사실상 32강 진출 가능성은 50% 이상이 됐다.

 

선수 시절에도 1990 이탈리아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섰다가 12년 뒤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첫 승을 신고했던 홍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월드컵 첫 승이 12년이 걸렸다. 2014 브라질에서 사령탑으로 월드컵 무대에 섰던 홍 감독은 1무2패로 조별리그를 탈락하며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12년 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축구 행정가로, K리그 울산 HD 감도독을 맡아 2연패를 달성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수련의 시간을 보낸 홍 감독은 마침내 감독으로서 월드컵 첫 승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의식한 듯 홍 감독은 “선수 때도, 감독 때도 12년 만에 첫 승을 했네요”라며 감회에 젖었다.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황인범을 안아주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뉴스1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오현규가 골을 터뜨린 후 도움을 준 황인범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감독으로서 첫 승을 거뒀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 승리 역시 오늘 정말로 고생한 선수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2014 브라질에서의 처절한 실패는 2026 북중미에서의 첫 승의 밑거름이 됐다. ‘쓸놈쓸’(쓰는 놈만 계속 쓴다), ‘의리 축구’라는 말들이 나올 정도로 자신이 이미 써봤던 선수들만 고집했다가 실패했던 2014 브라질 때와는 달리 2024년 다시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후엔 많은 선수들을 선발해 등용했다. 오현규(베식타시), 엄지성(스완지시티), 배준호(스토크시티) 등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 게 대표적인 예다.

 

게다가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는 선수단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2014 브라질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게 황열병 주사를 늦게 맞는 바람에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던 것이었다. 이번 북중미를 앞두고는 해발 1500m대에 달하는 과달라하라의 고지대 적응을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가며 대책을 세웠다. 과달라하라 입성에 앞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전캠프를 차리고 보름 넘게 고지대 적응 훈련을 했다. 체코전 승리 후 선수들도 입을 모아 “사전 캠프에서의 고지대 적응 훈련이 이날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 경기 종료 후 오현규가 손흥민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감독도 “고지대가 결과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체코 선수들이 후반전에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반대로 우리 선수들은 그 시간대에 체력적으로 상대를 더 몰아쳤다. 더 공격적이었다”면서 “우리에게 아주 큰 효과를 줬다”고 평가했다.

 

체코전 역전승의 ‘백미’는 손흥민을 오현규로 교체한 것이었다. 교체 시점까지 슈팅 6개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 등 득점만 못 올렸을 뿐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던 손흥민이었다. 게다가 손흥민은 주장이자 한국 축구의 상징인 선수다. 막내로 출전했던 2014 브라질 이후엔 항상 월드컵 무대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던 선수였지만, 홍 감독은 손흥민 교체를 통해 공격진의 활력을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방향을 택했다. 오현규는 홍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역전골을 터뜨렸다. 용병술 100% 적중의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준비된(교체) 카드였다. 본인이 아주 많은 노력을 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1일(현지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2-1 승리한 대한민국 홍명보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홍 감독의 과감한 용병술에 해외 언론도 호평 일색이다. 아일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이자 BBC 해설위원인 클린턴 모리슨은 “처음에는 주장 손흥민을 빼고 오현규를 투입한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 교체투입한 오현규가 승리를 결정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런 메이저 대회에서 감독들이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제 홍명보호는 19일 오전 10시에 개최국인 멕시코를 상대한다. 에스타디오 아크론을 가득 채울 멕시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등 홈 어드밴티지를 듬뿍 누리며 뛸 멕시코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멕시코를 꺾어내고 조 1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아직 긴가민가한 홍 감독에 대한 평가와 여론은 180도 뒤집어질 수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1차전에서 체코에 승리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12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회복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감독은 멕시코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체코전 승리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홈 팬으로부터 굉장히 성원을 받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봤고, 저희한테도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도 “이 경기장에서 우리가 한번 해봤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