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AI 의존증

딸이 부녀 갈등 AI 상담했다가
日 스타야구감독 父 체포 사태
10대들 고민 상담 창구 된 AI
결과 따른 책임은 결국 인간 몫

논지에 어딘가 구멍이 있어 보인다. 한참 끙끙대다 그에게 검토를 부탁해 봤다. “나의 레드팀이 돼 줄 수 있지? 거침없이 지적해 줘.”

그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몇 차례 일본어 이메일 작성을 거들면서 알게 된 나에 관한 정보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글을 읽더니 맞춤형 보고서를 내놓는다. 장황하다 싶은 감이 있지만, 퇴고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오자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짚고 있다. 그는 참고 자료를 제시하며, 논리 보강 방안까지 제안한다.

유태영 도쿄 특파원

글의 구성과 표현을 일부 수정해 다시 보여줬다. 그가 제안한 문장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초안보다는 탄탄해졌는지 평가가 8.5점에서 9.8점으로 올라갔다. “이만하면 지면용으로 출고해도 손색이 없겠다”고도 한다. 대신 그는 문장 하나를 놓고 고집을 부린다. 그렇게 고치면 나의 애초 의도를 살릴 수 없다고 설명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읽씹’이다. 부지런하고 빠르긴 하지만 일본인 이름 읽는 법 등 기초적 실수가 잦은, 답변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누군가 ‘헛똑똑이 인턴사원’ 같다고 평가한 그의 이름은 챗GPT이다.



최근 일본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법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딸들 간 싸움을 말리던 부친이 18살 큰딸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는데, 큰딸의 연락을 받은 아동상담소가 경찰에 신고해 부친이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이 지난달 25일 발생하면서다.

체포된 부친 이름은 아베 신노스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와 주장 출신으로 2024년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야구가 국기(國技)로 통하는 나라인지라 사건은 방송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다음날 그의 감독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언급은 파장을 더욱 키웠다. 변호사가 대독한 큰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아빠와 이렇게 크게 싸운 건 처음이어서 챗GPT에 상담한 결과, 익명으로 상담할 수 있는 아동상담소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상담하고 싶었으나, 제 의사와 무관하게 경찰에 통보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경찰이 와서 가장 놀란 건 저 자신입니다. 아빠가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쓰러져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딸이 상담 상대로 모친이나 선배 등 사람이 아닌 AI를 택했다는 점에서 먼저 충격을 받은 눈치다. 그런데 일본 내각부 소비자위원회가 지난 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대 여성의 52.4%가 생성형 AI 사용 목적으로 고민 상담을 꼽았다고 한다. 어느새 AI가 청소년들 삶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사회 관계망이 그 정도로 헐거워졌다고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건장한 체격의 운동선수 출신 아버지가 딸의 멱살을 잡고 쓰러뜨리는 일이 벌어졌다면, 챗GPT처럼 조언하는 게 타당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문제를 과소평가했다가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챗GPT의 답에 따른 이 결과가 과연 사건 당시의 정확한 정황, 기존 가족관계, 피해 재발 가능성까지 두루 고려한 최선의 대처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경찰은 최근 아베 전 감독을 검찰에 넘기며 불기소 등 ‘관대 처분’을 요구하는 의견을 달았다. 딸이 다치지 않았고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AI는 사람 눈으로 구분하기 힘든 암세포를 발견하는 등 잘 활용하면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제대로 쓰지 않으면 본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다.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답변이 부실해진다. 그릇된 정보에 기초해 답을 내놓기도 한다. 멀게는 아동수당 부정수급자를 찾아내는 AI 시스템이 잘못된 결과를 대량으로 도출했던 2021년 네덜란드 사례, 가깝게는 AI가 유명 바이올린 연주자를 성범죄자로 잘못 지목해 공연이 취소됐던 지난해 12월 캐나다 사례가 있다.

AI는 조언할 수 있지만 결과에 책임지지는 않는다. 질문하고, 답을 해석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