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후보’ 네덜란드를 주저앉힌 쿠만의 방심, 모리야스의 맹수 같은 용병술

후반 30분, 성급했던 네덜란드의 ‘잠그기’가 화근
구보 부상 악재를 오가와-가마다 ‘트윈 타워’ 호재로 바꾼 모리야스의 지략
패스 축구 버리고 ‘늪 축구’로 진화한 일본의 무서운 집념

승점 1점을 나눠 가졌지만, 벤치 싸움에서는 일본이 완승을 거둔 한 판이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최고의 빅매치로 꼽힌 F조 1차전은 로날드 쿠만 네덜란드 감독의 ‘조기 잠그기’ 패착과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의 ‘위기 극복 용병술’이 대비를 이뤘다.

 

네덜란드(8위)의 버질 판다이크가 14일(현지 시간) 미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 일본(18위)과 경기 후반 6분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양 팀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댈러스=AP뉴시스

 

◆ ‘오렌지 군단’의 치명적 오판, 후반 30분의 퇴각령

 

전반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네덜란드는 피르힐 판 다이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피지컬로 일본의 장기인 세밀한 패스 네트워크를 완전히 무력화했다. 후반 19분 크리센시오 서머빌의 추가골로 2-1 리드를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승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후반 30분 이후에 발생했다. 쿠만 감독은 아직 정규시간이 15분 이상 남은 시점에서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인 운영을 지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진을 믿은 선택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일본의 강한 전방 압박을 피해 스스로 주도권을 내주자, 일본의 공격진이 네덜란드 진영을 자유롭게 휘젓기 시작한 것이다. 우승 후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성급한 퇴각령이 화를 자초했다.

 

◆ 구보의 부상 악재, ‘빅앤빅(Big & Big)’ 고공 폭격으로 맞받아친 모리야스

 

일본에게도 절체절명의 위기는 있었다. 후반 30분, 팀 공격의 핵심이자 네덜란드의 측면을 흔들던 구보 다케후사가 무릎 부상으로 쓰러진 것이다. 에이스의 이탈로 전술적 구심점을 잃은 상황에서 모리야스 감독의 선택은 과감했다.

 

기술 축구를 구사하던 구보 대신 190cm의 장신 스트라이커 오가와 고키를 투입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장신 수비벽에 맞서기 위해 패스 게임을 과감히 포기하고, 선이 굵은 고공 플레이로 전환하겠다는 벤치의 메시지였다. 최전방의 가마다 다이치와 오가와를 동시에 활용한 ‘트윈 타워’ 전략은 수비적으로 내려앉은 네덜란드에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갔다.

 

일본(18위)의 오가와 고키가 14일(현지 시간) 미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 네덜란드(8위)와 경기 후반 43분 가마다 다이치의 동점 골에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오가와는 이 골에 도움을 기록했고, 일본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댈러스=AP뉴시스

 

◆ 행운이 아닌 필연, 패스를 버리고 ‘늪’을 선택한 일본의 저력

 

결국 후반 44분, 모리야스 감독의 ‘롱볼·세트피스’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오가와가 높은 타점으로 떨군 헤더가 가마다의 머리를 맞고 굴절되며 동점골로 연결됐다. 기록상으로는 가마다의 ‘행운의 골’이었지만, 전술적으로는 네덜란드의 높은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기 막판 공중볼 경합에 올인한 모리야스 감독의 계산된 뚝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과거 일본 축구는 경기 내용이 좋아도 결정력 부족과 피지컬 열세로 막판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네덜란드전은 달랐다. 화려한 패스 축구가 막히자 끈질기게 버티는 ‘늪 축구’로 전환했고, 위기 상황에서는 롱볼을 불사하는 실리 축구로 강호를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세계 정상을 공언한 일본의 호언장담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모리야스 감독의 벤치 지략과 선수들의 집념이 전술적으로 증명해 낸 9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