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이 16년 만에 월드컵 1차전 승리를 거뒀지만, 거리의 온도는 의외로 차가웠다. 한국이 체코를 2대1로 꺾고 A조 첫 판을 잡았음에도, 광화문 응원 인파는 2002년은커녕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축구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진단과 함께 “JTBC가 중계권을 가져가서 그런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은’ 시청률
먼저 데이터만 놓고 보면 한국-체코전은 ‘참패’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지상파 KBS와 종편 JTBC가 나눠 중계한 이번 경기는 합산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넘겼고, 평일 오전 11시 경기라는 시간대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한국 시간 기준 출근·등교 시간대에 열린 탓에 거실 TV 앞에 앉기 어려운 직장인·학생들이 많았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 실시간 중계·클립 소비까지 포함하면 ‘화면 앞에 모인 눈’의 총량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온라인 플랫폼의 동시 접속자 수는 수백만 명을 넘겼고, 경기 직후 관련 하이라이트 영상은 짧은 시간 안에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전통적인 TV 시청률 지표로는 잡히지 않는 분산 시청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JTBC 독점’ 구조가 만든 심리적 반감
그럼에도 이번 대회를 둘러싼 감정선이 미묘한 건 올림픽·월드컵 중계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JTBC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포함해 향후 올림픽·월드컵 패키지 중계권을 한꺼번에 확보하며 사실상 국내 권한을 틀어쥐었다. 이후 지상파와의 재판매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MBC·SBS가 월드컵 지상파 중계에서 빠지고, KBS만 합류하는 이례적인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내세워 지상파를 압박했다”, “월드컵을 공영이 아닌 종편 중심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여야 정치권과 시청자 단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수십 년간 누려온 ‘지상파 3사 중계 선택권’이 사라지고, 익숙한 중계진·해설 조합 상당수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셈이다. 월드컵을 ‘국민 모두의 경기’라기보다 특정 채널의 상품으로 느끼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심리적 거리감을 키웠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시간대·플랫폼이 바뀐 ‘조용한 축구’
이번 대회가 치러지는 환경도 예전과는 다르다. 한국-체코전처럼 평일 오전 킥오프 경기가 많은 탓에, 전통적인 ‘단체 관람’을 전제로 한 거리 응원이나 호프집 응원이 애초에 조직되기 어려운 일정표다.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는 시청자 상당수는 사무실·교실·대중교통 등에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으로 경기를 훑어본다. 같은 90분 관람이라도 집단 열광이 아니라 개별 소비로 흩어지는 구조다.
멀티 플랫폼 시청이 일상화된 것도 변수다. 본방송보다 SNS에서 돌아다니는 골 장면 클립, 유튜브 전술 분석, 숏폼 리액션 영상으로 경기를 소비하는 팬들이 늘었다. “차라리 하이라이트로 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생중계 한 타임에 응원이 집중되는 경험 자체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 예전처럼 한 채널·한 화면에 온 국민 시선이 쏠리지 않으니, 경기 내용과 별개로 ‘축구 열기’가 약해 보일 수밖에 없다.
◆월드컵 열기 식히는 JTBC 재무 건전성 논란
그런 변화 속에서 중계권을 가져가기 위해 무리하게 ‘판돈’을 올린 JTBC의 재무 건전성 논란까지 겹치며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광고 시장이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진 가운데, 대형 스포츠 이벤트 중계권은 통상 수천억 원 단위 선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수익 구조상 광고·스폰서·재판매 수입으로 회수가 가능하더라도, 단기간에 막대한 현금이 빠져나가는 ‘캐시 아웃’은 재무제표상 유동성 지표를 악화시키기 쉽다.
이미 영업이익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월드컵·올림픽 패키지 딜은 ‘승부수이자 동시에 모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JTBC는 최근 유동성 논란이 불거지자 이례적으로 “콘텐츠 제작·방영에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입장문까지 내며 진화에 나섰다.
JTBC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며 “경영 효율화를 위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노력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디지털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중심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TV 방송 광고 시장이 크게 위축되는 등 대외 여건이 악화돼 일부 채권에 대한 지급불능 상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며 “보도와 대형 스포츠 중계 등 방송 콘텐츠 제작과 방영은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JTBC 효과’는 단순히 한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라, 월드컵 같은 초대형 이벤트가 자본 논리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처럼 작용하고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월드컵 중계 구도가 복잡해질수록 축구 열기와는 별개로 피로감과 거리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월드컵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향후 중계권 제도 개선과 방송 공공성 논의를 어디까지 밀고 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