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프트’ 20년, 다음 세대에 기회 돌려줄 때

최근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이른바 ‘시프트’의 20년 만기가 다가오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년은 한 가구의 삶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자녀가 자라고, 이웃이 생기고, 동네가 생활권이 되었을 것이다. 그 사이 서울 집값도 크게 올랐다. 퇴거 이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호소가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은 안타까움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장기전세주택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 주택을 기다리는 다른 시민들이 누구인지 함께 봐야 한다. 장기전세주택의 핵심은 애초부터 ‘소유’가 아니라 ‘거주’였다. 집을 반드시 사야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무주택 시민이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자는 것이 제도의 출발점이었다.

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이 점에서 장기전세주택은 지난 20년 동안 분명한 역할을 했다. 입주민들은 주변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오랜 기간 이사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급격한 전세금 인상과 월세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그만큼 저축과 자녀 교육, 생활 설계의 여지도 가질 수 있었다. 장기전세주택은 자립을 막은 제도가 아니라, 불안정한 주거 시장 속에서 자립을 준비할 시간을 제공한 제도였다.



그러므로 20년 만기 후 분양전환을 허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장기전세주택은 처음부터 분양을 약속한 주택이 아니다. 공공이 보유한 주택을 한 세대가 안정적으로 사용하고, 만기가 지나면 다음 세대와 다른 주거 취약계층에 다시 돌아가도록 설계된 순환형 공공 자산이다. 이제 와서 분양전환을 허용한다면 제도의 근간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 된다.

공공임대주택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서울처럼 토지와 주택 가격이 높은 도시에서는 공공임대 한 채를 새로 만드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현재 거주자에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유권을 넘기는 순간, 그 주택은 더 이상 미래 세대와 대기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다. 이는 한 단지, 한 가구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의 공공임대 재고 전체와 연결된 문제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는 이미 20년 동안 낮은 주거비와 높은 주거 안정이라는 중요한 공적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 혜택 위에 다시 저가 분양이라는 자산 이전까지 더해진다면, 오랫동안 공공임대주택을 기다려온 대기자들은 큰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주거복지였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로또’처럼 보이는 순간, 정책의 신뢰는 흔들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의 본질을 폄훼하거나 무리하게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거복지 체계 안에서 퇴거자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하다면 그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다듬는 일이다.

정책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장기전세주택은 특정 가구에 영구히 귀속되는 집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차례로 사용하는 공공의 주거 안전망이다. 20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회의 시간이었고, 이제 그 기회는 다음 사람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기존 입주민의 어려움은 세심하게 돌보되, 공공임대주택이라는 공동의 자산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입주민도, 대기자도, 미래 세대도 납득할 수 있다. 그것이 장기전세주택의 본래 취지를 지키면서도 사회적 충격을 줄이는 책임 있는 길이다.

 

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