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휘은의 이상한 노이즈] 한국은 누구의 실험실인가

국내기업 총수들 만난 젠슨 황
韓과 피지컬 AI 협력에 적극적
현실 변수 학습할 최적의 환경
‘협상카드’ 쥐는 영민함 갖춰야

젠슨 황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해 치킨 회동에 이어 올해 내한한 젠슨 황은 더욱 친밀해진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왔다. 술기운이 벌겋게 오른 얼굴로 재벌 총수들과 어깨동무하며 국내 게이머들에게 인사했던 그가 이번에는 야구 경기장에서 시구를 하고, 전광판에 비친 자신을 보며 박자를 타고, 땡볕 아래에서도 웃으며 관중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사인을 했다. 여러 번의 먹방과 유력 예능 방송 출연, 진솔하고 담백한 말투로 편안한 웃음을 머금은 젠슨 황은 시가총액 약 5조달러 기업의 총수라는 이미지에서 친근하고 다정한 멘토의 모습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빠듯하게 짜던 그의 6월 내한 일정은 국내 파트너 기업을 겨냥한 사업 방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선지는 한국인의 일상 속에 깊게 스며든 곳들이었다. 젠슨 황은 한국을 최고의 파트너로 거듭 언급하며 한국인을 미래 산업의 주역으로 치켜세웠고, 한국 대중과 언론은 그의 진솔한 행보에 환호했다. 그러나 호감은 전략을 흐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엔비디아는 어떤 생각으로 한국에 다가오는 걸까?

반휘은 칼럼니스트

국내 대기업과의 거래에 집중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의 내한은 한층 또렷한 목적을 품고 있었다. 인공지능(AI)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피지컬 AI로 옮겨가는 지금, 엔비디아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실세계의 데이터다. 젠슨 황도 여러 차례 데이터 수집과 축적의 난관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에이전틱 시스템과 로봇 시스템, 피지컬 AI 구현에서도 데이터 확보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화면 속 챗봇이 인터넷에 쌓인 글과 이미지를 먹고 자랐다면, 몸을 가진 AI는 공장과 도로와 건물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움직임을 먹어야 한다. 현실은 정제된 자료가 아니라 사고와 오차와 예외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장소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시 일어서는 물리적 경험은 검색해서 긁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피지컬 AI의 경쟁력은 그 장소를 얼마나 오래, 넓게, 안전하게 학습하느냐에 달렸다. 그렇기에 이번 방문은 칩을 파는 일을 넘어, 그 데이터를 어디서 캘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 현장으로 한국만 한 곳이 드물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실험장은 지정학의 벽에 막혔다. 미국 동맹 안에서 제조업과 로보틱스의 현장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기계 산업을 갖췄고, 생산 현장의 자동화 수준도 높다. 행정과 기술의 결합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비교적 낮으며, 전자정부와 디지털 인증이 이미 일상에 스며들었다. 5G를 비롯한 통신 인프라와 밀집된 도시 환경은 새로운 시스템을 짧은 시간 안에 시험하고 수정하기에 유리하다. 피지컬 AI가 필요로 하는 공장, 도시, 소비자, 행정의 축소판에 가까운 한국은 고객 시장이자 현실 변수를 학습할 교실이며 성능을 입증할 전시장이다. 기꺼이 문을 열어 주는 나라만큼 실험자에게 편한 상대도 없다.

두산로보틱스와의 협력을 상징하는 시구, 로봇이 돌아다니는 현대자동차와 네이버 사옥 방문, 게임 엔진으로 가상 환경을 빚어내는 크래프톤, NC와의 회동은 따로 떨어진 친선이 아니었다. 각 요소를 결합하면 한국 곳곳에 하나의 거대한 실험 설비를 도포하는 작업의 설계도가 된다. 개별 기업과 악수하는 모습 뒤에서, 엔비디아는 한 나라 전체를 피지컬 AI의 검증 환경으로 설계하고 있었다. 소버린 AI, 곧 자주적인 AI라는 말이 협력의 명분으로 오갔지만, 정작 모델의 두뇌와 그 위에서 학습된 결과물이 누구의 것으로 남느냐는 좀처럼 입에 오르지 않았다.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고 했다. 실험이 끝난 뒤 버려질 시험장으로 남지 않으려면 친밀감의 환대에서 깨어나, 테스트 베드라는 처지부터 협상의 카드로 바꿔 쥐는 영민함을 갖춰야 한다. 우리 데이터로 학습된 모델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지, 그 기술과 성과가 사회 전체로 돌아올 길이 열려 있는지를 거래의 조건으로 내걸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의 소유권과 재사용 권한, 국내 기업과 연구자가 얻을 접근권까지 계약서에 분명히 남겨야 한다. 주권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한국은 편리한 현장과 순응적인 시민을 제공한 장소가 아닌 미래 산업의 주역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젠슨 황은 다시 웃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환대했던 우리는 그가 무엇을 가져갔고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아직 셈하지 못했다. 친근한 멘토가 떠난 뒤에도 실험실의 전원은 우리의 삶에 연결된 채 남는다.

 

반휘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