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이 휩쓸고 간 풍경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바이러스 확산 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재난지원금과 방역 지침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일상적 광경이 되었다. 조선시대 감염병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524년, 평안도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평안도는 중국을 오가는 사신단이 왕래하고 수많은 물자가 교역되던 물류 유통의 요지였다. 아울러 평안도는 북방을 방비하는 군사적 요충지기도 했다. 빈번한 교류는 자연스레 인구밀도의 증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당시 평안도는 의주 지역 성곽을 보수하고 여진족을 축출하는 대규모 군사 작전까지 겹쳐 있었다.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며, 유동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틈을 타 티푸스로 추정되는 병원체가 스며들었다. 감염병은 마른 대지의 들불처럼 순식간에 평안도를 집어삼켰다.
1월 곽산에서 시작된 사망자 보고는 용천, 의주를 거쳐 무섭게 번졌다. 조정의 대처는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감염병의 확산은 7월에야 보고되었다. 조정은 다급하게 구호에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감염병 유행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조정은 선례에 따라 대응했다. 진휼(賑恤·재해 등으로 어려워진 가난한 백성을 도와 구제하는 일)과 매장, 의관 파견과 약재 지급, 그리고 여제(厲祭)와 같은 종교적 조치가 시행되었다. 여제는 후손의 제사를 받을 수 없는 귀신을 위한 것으로, 불교나 도교와 다른 유교 의례였다.
방역과 함께 다른 현안이 생겨났다. 바로 사망자로 텅 빈 평안도 국경. 전력의 공백을 다시 채우는 입거(入居: 이주) 정책이었다. 조정은 통치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나 죄수 가족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려 했다. 골칫거리를 치우고 안보 공백을 메우려는 속셈이었다.
생존이 최우선인 백성들에게 평안도 이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안보와 영토 보전을 내세운 조정의 정책과 생존이 최우선이던 백성의 본능은 소리 없이 충돌했다. 원주민이나 이주민이나 저마다 살길을 찾아 도망쳤다. 도피가 이어지며 감염병 바이러스는 살길을 찾는 이들의 몸에 숨어 남북으로 확산되었다. 조정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1월 사망자가 폭증했던 이유였다.
조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면서, 장기적 예방 정책도 병행했다. 바로 의서의 보급이었다. 조정은 『간이벽온방』을 편찬해 보급했다. 이른바 자가 방역, 치료법의 보급이었다. 이 책은 민간요법을 포괄했고, 소독이나 정기적인 훈증 같은 지침이 실려 있어 감염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 유용했다. 의학 서적의 보급은,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했던 조선 조정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 이로써 지역 공동체도 질병에 맞설 의료 지식을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제도적, 의료적 대응은 한계에 봉착했고, 입거 정책은 폐단을 노출했다. 입거시킬 대상에서 지방 토호는 제외되기 일쑤였고, 애매한 백성들이 대거 포함되기도 했다. 공포에 질린 백성들은 감염병이 창궐하는 곳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고향에서 죽겠다며 아우성쳤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렇게 조정이 내놓는 정책은 한계에 부딪혔다.
1525년 2월 감염병은 다시 폭발했다. 그해 가을까지 누적 사망자만 2만 2천 명을 넘어섰다. 대응책이 한계에 부딪히며 민심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에 조정은 천인상응론을 내세워 정치적 해결을 모색했다. 민심이 악화하면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경고한다는 논리에 따라, 조정은 감세와 사면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감세가 바이러스를 없애진 못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백성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는 것이 민심을 회복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갈등이 조정 내에서 불거졌다. 감염병의 극복이라는 명분은 같았으나, 임금과 신하의 정치 셈법은 달랐다. 신하들은 재정 악화와 기강 해이를 들어 감세와 사면에 반대했다. 반대 이면에는 감염병 창궐의 책임을 정책이 아닌, ‘임금의 덕’으로 돌려 왕권을 견제하려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중종도 마찬가지였다. 중종은 감세와 사면을 통해 감염병 정국을 타개하는 동시에, 향후 수습 국면에서도 정책을 통해 신하들을 통제할 의도였다.
500년 전 평안도 감염병 사태는 오래된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시대를 가리지 않듯, 감염병을 대하는 인간군상 역시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닮아 있다. 방역을 명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팬데믹을 이용한 정치 공방, 그리고 그 속에서 생사기로에 섰던 백성은 불과 6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55)
홍현성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