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말 카드 꺼내고도… ‘월드컵 초년생’ 못 뚫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최대 이변 주인공 ‘카보베르데’

‘랭킹 67위’ 첫 본선 오른 약체팀에 고전
유럽 빅리그 선수 0명인데도 0-0 ‘수모’
패스 804개·슈팅 27개 파상공세 무력화

인구 52만 작은 섬나라, 역사적 승점 1점
불혹 수문장 보지냐 선방쇼에 관심 폭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이전에 카보베르데라는 나라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1975년 500년 만에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자리 잡은 인구 52만명의 작은 이 섬나라는 1986년 FIFA에 가입한 뒤 2002년 한·일 대회부터 월드컵 예선에 꾸준히 도전해 왔다. 그리고 이번 아프리카 예선 D조에서 ‘전통의 강호’ 카메룬을 제치고 조 1위(7승2무1패)로 사상 첫 본선행 티켓을 품에 안았다. 그래도 낯선 이름 탓에 카보베르데는 월드컵 본선 출전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수혜를 본 나라 정도로 여겨졌다.

 

이런 카보베르데가 북중미 대회 초반 최대 이변을 일으킨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카보베르데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FIFA 랭킹 2위이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으로 비기며 첫 출전 첫 경기에서 역사적인 승점 1점을 따내는 쾌거를 일궜다.

철통 방어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가운데)가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들 사이에서 뛰어올라 공을 잡고 있다. 작은 사진은 보지냐가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기뻐하는 모습. 애틀랜타=AFP·로이터연합뉴스

카보베르데는 FIFA 랭킹 67위로 이번 대회에 나서는 48개국 중 가나(73위), 퀴라소(82위), 아이티(83위), 뉴질랜드(85위) 정도만을 아래에 두고 있다. 또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고 포르투갈리그 중소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으로 ‘무적함대’ 스페인에게는 약체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거함 스페인을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하는 승부를 펼쳐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카보베르데는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끈끈한 조직력과 몸을 던지는 육탄 방어로 견뎠다. 스페인은 무려 804개의 패스를 시도해 745개를 성공(성공률 약 93%)시키며 카보베르데(총 패스 시도 304개)를 한쪽 진영에 가둬 놓고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27차례의 슈팅을 쏟아부었고 측면에서 40개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수비벽을 촘촘하게 세운 카보베르데에 막혀 유효 슈팅은 7개에 그쳤고, 크로스가 동료에게 정확히 연결된 것도 단 6차례에 불과했다.

 

대승을 기대했던 상대에 고전한 스페인은 후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직후 가비(바르셀로나)를 빼고 지난 4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일찍 시즌 아웃됐다가 회복해 첫 경기 휴식을 주기로 했던 ‘신성’ 라민 야말(바르셀로나)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야말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진을 끌고 다니며 스페인 공격에 활력을 주는 등 존재감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것이 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날 카보베르데의 월드컵 첫 승점을 안겨준 영웅은 베테랑 수문장 보지냐(40·샤베스)였다. 2012년 국가대표 데뷔 이래 총 88번의 A매치에 출전하며 카보베르데 역대 최다 출장 2위에 올라 있는 보지냐는 불혹의 나이에 나선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서 온몸을 날리는 ‘선방쇼’로 든든하게 골문을 지켰다.

 

그는 사상 첫 승점 획득을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감동을 자아냈다.

 

보지냐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 그리고 모든 카보베르데 국민이 무척 자랑스럽고 행복한 마음일 것”이라며 “고향 어머니 집에서 큰 잔치가 열릴 것이다. 어머니가 현장에 오시지 못해 슬퍼하셨지만 이 영광을 카보베르데의 모든 국민에게 바친다”고 소감을 밝혔다. 5만6000명이던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는 경기 후 500만명 이상 폭증해 561만명으로 늘었다.

 

페드루 브리투 카보베르데 감독 역시 감격했다. 그는 “이 결과는 조국에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전 세계가 우리나라와 우리 팀을 보게 되길 바랐다”면서 “이날 우리는 탄탄한 조직력과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다. 끊임없이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회복력’이야말로 카보베르데의 참모습임을 증명해냈다”고 말했다. 브리투 감독은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며 “우리처럼 작은 국가의 대표팀들도 강팀과 대등하게 맞설 자격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