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유럽 순방의 바쁜 와중에 잠시 바티칸을 공식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교황 레오 14세와 만나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이어진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과의 면담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설명하며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구절은 원래 신앙과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남북 대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 사용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있고 대화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겠다는 뜻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그 다음 장면이다. 대통령은 여러 메시지를 내놓았다. 교황의 방한을 요청했고,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나아가 교황의 방북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면담 이후 공개된 메시지에는 교황의 직접 발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말은 비교적 상세히 전해졌지만, 교황의 응답은 “공감했다”, “호응했다”, “관심을 표했다”는 정도의 간접적인 설명으로 남았다.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교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외교의 세계에서 침묵은 반드시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가장 신중한 언어가 된다. 교황청은 군대도, 경제적 제재 수단도 없다. 오직 도덕적 권위와 상징 자본만으로 국제정치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그래서 교황의 한마디는 종종 국가 정상의 연설보다 더 큰 파장을 낳는다. 특히 한반도 문제처럼 복잡한 지정학적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은 재임 시절 북한으로부터 공식 초청이 오면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 한마디는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이 되었고, 남북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반면 레오 14세 교황은 아직 자신의 한반도 인식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취임 초기인 만큼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면담 역시 자신이 구상을 제시하는 자리라기보다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듣고 상황을 파악하는 성격이 강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교황만의 모습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진정한 중재자들은 대개 먼저 말하기보다 먼저 들었다. 갈등 당사자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중재자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양측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야말로 중재자의 자격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레오 14세의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여백일 수도 있다.
이번 만남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장면은 대통령이 종교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몇 달 전 석가탄신일 행사에서는 자비와 화합의 의미를 강조했고, 이번 교황청 방문에서는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 고백이라기보다 종교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상징과 언어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행위에 가깝다. 여기서 이 대통령의 종교관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된다. 그는 종교를 사적 신앙에 가두기보다 사회를 묶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공공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정치는 본래 이해관계의 기술이고 외교는 숫자와 전략, 국익의 계산이 중심이 되지만, 그런 현실의 언어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때때로 종교의 언어를 빌린다.
불교의 자비, 천주교의 화해,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는 오랜 세월 인간 사회의 갈등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축적해 온 지혜의 언어다. 정치가 현실을 다룬다면 종교는 희망을 다룬다. 정치가 현재의 이해관계를 조정한다면 종교는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바티칸에서의 만남도 그랬다. 이 대통령은 남북 대화의 의지를 거듭 밝혔고, 교황은 답을 아꼈다. 외교에서 모든 답은 즉시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답은 기다림 속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답은 침묵 속에서 성숙한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화려한 수사보다 깊은 침묵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 바티칸에서의 만남이 남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대통령이 한 말도, 교황이 하지 않은 말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닫힌 문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겠다는 의지와 그 말을 서둘러 평가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 침묵. 때로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자리에서 평화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