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단군신화 너머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고대 인도, 역사보다 ‘신화’ 선호
공동체 결속… 타문화 배척 요인도
韓 인구 감소로 이민자 수용 상황
포용 위해 넓은 국가 개념 가져야

인도 히말라야 산중에 지구 온난화를 보여주는 현장이 있다. 갠지스강 발원점인 강고트리. 구불구불 깊은 산중을, 버스를 타고 10여 시간을 가야 한다. 강고트리에 도착하면 놀란다. 이곳은 더 이상 갠지스강 발원점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듣는다. 과거에는 히말라야 빙하가 강고트리까지 뻗어 있으나, 지구 온난화로 강고트리에서는 사라졌다. 강고트리에서 18km 위(고묵)로 빙하가 올라갔다.

강고트리와 고묵은 여름철 사람들로 붐빈다. 오렌지색 장식을 한 힌두인이 줄을 잇는다. 지구 온난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힌두 신화의 중요한 성지이기 때문이다. 힌두 신화에서 강고트리는 하늘의 강인 ‘강가’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지점. 하늘의 강이 바로 떨어지면 땅이 감당할 수 없으니, 시바신이 머리로 강물을 대신 받아준다. 강고트리 순례는 북인도 힌두들의 로망이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인도인은 신화를 좋아한다.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와 같은 힌두 신화, 서사 문학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힌두 신화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신화에 관한 한 세계에서 인도처럼 풍부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데 대신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게 있다. 역사책이다.



필자는 인도 수도 델리에 산 적이 있다. 이때 고대 인도인이 역사책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덩치가 비슷한 이웃 나라 중국과 비교하면 이 점이 대비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근면한 역사 기록 국가. 고대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창문을 갖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등….

고대 인도인은 역사책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에 후대인이 고대 인도를 들여다보는 방법 중 하나는 종교 텍스트 찾아보기다. 예를 들면 초기 불교 관련 문헌들에 왕들의 이름이 나온다. 아쇼카왕이 그중의 한 명이다. 인도에 와서 보고, 역사 기록이 없다는 걸 발견한 사람들은 이슬람학자다. 11세기 이슬람학자 알비루니는 힌두인에게 그들의 과거를 물었다. 사건의 역사적 순서와 왕들의 날짜가 궁금했다. 돌아온 건 연대기가 아니라 서사시였다. 과거에 람왕이 살았다는 ‘라마야나’, 쿠루 왕가의 형제들이 벌인 거대한 전쟁 이야기 ‘마하바라타’였다. 연대기에 익숙한 이슬람학자는 힌두의 탈역사의식을 믿을 수 없었다.

고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은 왜 역사책을 쓰지 않았을까, 왜 역사를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일까?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찾았으나 필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책(‘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을 보다가 흥미로운 연구를 접했다.

핑커에 따르면, 미국 인류학자(UC 샌타바버라 도널드 E 브라운)가 인간 본성에 대해 연구하면서 “인도의 힌두교도는 왜 역사학에서 업적이 미미했는가”라는 과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인류학자가 내놓은 이론은 이랬다. “세습 카스트 사회의 엘리트들은 문헌을 들쑤시고 다니는 학자들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영웅과 신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증거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세습 계급으로 계층화된 사회들은 신화, 전설, 성인전을 선호하며, 역사, 사회과학, 자연과학, 전기, 그리고 보편적인 교육을 장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고정되어 있는 게 세습 사회다. 세습 사회가 ‘역사’ 대신 ‘신화’를 선호했다는 건 흥미로운 관점. 인도의 카스트 구조는 그 어느 사회보다도 오래되었다. 인도는 예나 지금이나 힌두교도가 압도적인 다수이고, 힌두 사회는 계급 구분이 기본 골격이다. 인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21세기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신화는 한때 공동체의 생존 장치였다고 진화생물학자(에드워드 윌슨)는 말한다. 한 사회의 구심점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공동체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는 필수품이었다. 공동체를 한데 묶는 접착제였다. 그게 없는 부족 공동체, 국가공동체는 버티기 힘들었다. 구성원이 흩어지니까. 한국이 단군신화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는 개천절이라는 국경일까지 만들었다.

문제는 신화가 공동체를 결속시킴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문호를 닫아두는 장치일 수도 있다는 거다. 현재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래된 신화와 민족국가 개념이 이민자를 포용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우리보다 앞서 ‘국가’ 개념을 새로 써온 나라들이 있다. 그들은 신화를 약화시키고 있다. 대신 내놓은 새로운 국가 정의는 이거다. ‘어쩌다가 한 땅에 살게 된 사람들의 공동체’. 이런 시선에서 보면, 신화는 낡아 보인다. 단군신화와 개천절 너머의 상상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