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프라이드’인가 ‘동조 압박’인가…日 ‘청소 문화’, 월드컵서 또 화제

‘메이와쿠’ 문화가 만든 배려의 미덕과 이면
프랑스에서 북중미까지 이어진 ‘정리 문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일본의 ‘아름다운 뒷마무리’가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대회마다 화제를 모으는 일본 특유의 ‘청소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이들의 문화와 그 이면에 가려진 모습도 함께 들여다봤다.

 

2022년 11월 2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일본-코스타리카전을 응원하는 일본 팬들 모습. 알라이얀(카타르)=뉴시스

◆ 월드컵에서 청소하는 일본 팬들

 

FIFA는 15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일본과 네덜란드 경기 직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경기가 열린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는 일본 팬들이 관중석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영상에 등장한 한 일본 여성은 경기장을 청소하는 이유에 대해 “선수와 서포터, 경기장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며 “이곳에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기 때문에 쓰레기를 남긴 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내내 파란색 봉투를 흔들며 응원전을 펼친 일본 관중들은 경기가 종료되자 이 봉투를 쓰레기봉투 수거용으로 사용했다. 단순한 응원 소품이 아니라 주변을 청소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15일 일본-네덜란드전 이후 공개된 일본 대표팀의 라커룸. 엑스(X·옛 트위터) 계정 ‘World Cup 2026’에서 캡처

 

이 같은 ‘청소 문화’는 선수단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전 무승부 이후 공개된 일본 대표팀의 라커룸 중앙에는 잘 개어진 수건과 봉투에 담긴 쓰레기가 정돈되어 있었고 문 앞에는 조끼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일본 대표팀은 과거 국제대회에서도 경기 이후 라커룸을 청소하고 감사 메시지를 남겨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통해 세계 무대에 처음 알려진 이들의 전통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뒀을 때는 물론, 일본이 출전하지 않은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에서도 일본 관중이 경기장 정리에 나서며 다시 화제를 모았다.

 

양기호 성공회대학교 일어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스포츠가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늘어났다”며 “이에 따라 일본의 ‘청소 문화’가 자주 노출되면서 해외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5일 일본-네덜란드전 이후 공개된 경기가 끝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본 팬들. 엑스(X·옛 트위터) 계정 ‘World Cup 2026’에서 캡처

◆동조 압박 부담된다는 비판도

 

국제대회마다 벌어지는 일본의 청소 문화에 대해 과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6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팔로워 21만명을 보유한 일본인 인플루언서 A씨는 일본 축구 서포터즈가 배포한 파란 비닐봉지 사진을 함께 공유했다. 해당 봉투에는 ‘재팬 프라이드(JAPAN PRIDE)’라는 문구와 함께 쓰레기 배출법, 응원 방법 등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를 두고 “애국심이나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건 좋지만, 이는 원래 개인이 내면에 품는 것 아닌가”라며 “글자 적힌 봉투를 수천 명이 들고 쓰레기 줍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해외 언론의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과연 ‘재팬 프라이드’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게시물에는 “일종의 동조하라는 압력처럼 느껴진다”, “불쾌한 위선”이라고 공감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 폐를 끼치지 않는 ‘메이와쿠 문화’

 

일본인들은 왜 경기가 끝나고 청소하는 문화를 갖게 됐을까.

 

양 교수는 “일본에는 기본적인 공중도덕의식으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메이와쿠(迷惑·민폐) 문화’가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가정, 학교 등에서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도록 교육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은 집단주의, 공동체 생활을 중시해 이 같은 규범을 철저히 지키려는 문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메이와쿠는 본래 ‘번뇌로 마음이 소란하다’라는 불교 용어였으나 메이지 시대 말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의미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길에서 타인과 부딪히기만 해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 미안합니다)’이라고 사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대화나 통화를 자제하는 것도 이 문화에서 비롯됐다.

 

민폐를 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는 장점만 있지 않다. 양 교수는 “일본에는 ‘메이와쿠 문화’와 맞닿아 있는 ‘온가에시(恩返し·받은 은혜를 갚음) 문화’가 있다. 이는 ‘‘내가 남한테 폐를 끼치면 상대도 나에게 보복할 수 있다’를 의미한다”며 “일본 사회에서는 조직 논리에 따라가지 못하면 동등하게 배려받지 못해, ‘이지메(いじめ·따돌림)’ 현상이 나오는 사회적 병리가 동시에 드러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