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도시에 꽃핀 AI·모빌리티… 中 스마트 허브로 도약 [세계는 지금]

‘신질생산력’ 전초기지 허페이에 가보니

낙후된 이미지 벗고 유망 산업 올인
음성인식 AI 안경 개발·유통 ‘실험장’
市, 자금난 업체 유치 전기차 기지로
도심 공원선 무인항공기 운항 체험

신재생 에너지 생태계 확장도 심혈
태양광 기업 ‘ESS 시장’ 공략 속도
배터리 업체 탄소 배출 최소화 의지
“안후이성, 성장 환경 전폭 지원 큰힘”

중국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는 한국에 낯선 도시다. 삼국지의 전략 요충지 ‘합비’, 혹은 포청천의 고향 정도로 알려졌을 뿐, 안후이성 역시 오랫동안 농업 중심의 내륙 지역으로 인식되며 상하이·선전·항저우 같은 연안 도시들에 가려졌다.

하지만 2026년의 허페이는 더 이상 과거의 도시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인공지능(AI), 드론, 전기차와 이를 뒷받침하는 신재생에너지·배터리 산업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중국이 내세우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첨단기술과 혁신이 이끄는 새로운 생산력)의 전초기지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거대한 미래 도시 시험장



전기차 기업 니오의 허페이 생산기지는 거대한 자동화 요새다. 지난 12일 11.3㎢에 달하는 부지 위에 세워진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약 1300대의 제조 로봇과 500여대의 운반 로봇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차체를 조립하고 있었다. 94%가 넘는 높은 자동화율 덕분에 공정 대부분은 기계의 몫이고, 사람은 정교한 품질 검사 정도만 수행한다. 이를 통해 1분에 1대꼴로 차량이 생산된다. 스마트 공정의 큰 장점은 빠른 생산 덕에 재고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문하면 이후 맞춤형 제조에 들어가 약 10일 안에 차를 받아볼 수 있다.

니오의 차별화 요소는 ‘배터리 교환 시스템’이다.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고 아예 갈아 끼우는 방식인데, 실제 공장 인근 스테이션에서 목격한 배터리 교체 과정은 3분이면 충분했다. 고객은 자동차 본체만 구매하고 배터리 임대 및 교환 서비스를 구독한다. 고가인 배터리 가격을 제외하면 차량 가격은 약 14만위안(약 3140만원) 수준까지 낮아진다. 니오는 차량용 운영체제인 ‘SkyOS’를 자체 개발하는 등 연구개발 역량도 보유하고 있다. 니오 하우스 관계자는 “단순한 자동차 판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과 에너지 생태계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이플라이텍(iFLYTEK)은 음성인식 AI 분야 글로벌 대표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중국어와 86개 언어 간 자동 번역을 지원하는 휴대용 번역기와 실시간 녹음·문자 변환 기능을 갖춘 스마트 메모 기기, AI안경 등은 이미 한국 등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아이플라이텍은 단순한 번역기를 넘어, 소리와 데이터를 인지하고 분석하는 인지 지능 기술을 통해 도시 전체의 산업 생태계를 지휘하고 있다. 스마트 전자칠판은 교육과 AI 기술이 결합한 인지 지능의 정점을 보여주고,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스파크’는 자동차, 제조, 의료 등 도시의 핵심 인프라에 이식되고 있다.

 

허페이 중심부에 위치한 뤄강공원 내 드론 시범비행장에서는 성인 두 명이 탑승할 수 있는 크기의 무인항공기(eVTOL)가 시범 비행을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이 무인기를 타고 뤄강공원 일대를 비행하는 유료 체험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체는 자율주행 유인 항공기 분야의 선두 기업인 ‘이항(EHang)’이다. 이들이 운용하는 기체는 중국 민용항공국(CAAC)으로부터 형식증명(TC), 표준감항증명(AC), 생산허가증명(PC)을 취득한 데 이어, 2025년 3월에는 실제 승객을 태우고 유료 상업 운항을 할 수 있는 운항증명(OC)까지 확보했다. 전 세계 eVTOL 업계에서 설계부터 생산, 실제 유료 상업 운항 허가까지 4종의 인증 전 과정을 통과한 기업은 이항이 유일하다.

주력 모델인 EH216은 2시간 완충 시 약 25분간 비행이 가능하며, 신형 VT35 모델의 경우 최대 비행 거리가 200㎞에 달한다. 현재 장쑤성 우시, 상하이 등 중국 내 40여개 지점에서 체험 거점을 운영 중이며, 일본, 스페인, 태국 등 21개국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이항 관계자는 설명했다.

 

◆미래 산업을 움직이는 녹색에너지

1997년 허페이에 설립된 선그로우(Sungrow)는 전세계 태양광 인버터 시장 1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현재는 태양광을 넘어 에너지저장장치(ESS), 풍력, 수소, 전기차 충전 솔루션을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했다. 전시관에서 마주한 선그로우의 포트폴리오는 가정용부터 유틸리티급 대형 프로젝트까지 커버하는 다양한 인버터 제품군과 함께, 수소 생산을 위한 전해조 시스템, 수상태양광 부력체 솔루션 등으로 다양했다.

선그로우는 최근 AI데이터센터(AIDC)의 전력난 해결사로 ESS를 제안하고 있다. 선그로우 관계자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불안정한 공급을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결국 미래 신재생에너지 체계의 핵심은 ESS로 수렴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션하이테크(Gotion High-tech)는 미래 모빌리티의 심장인 배터리 기술 축을 담당한다. 국내에는 CATL이나 비야디(BYD)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동력 배터리 민간 업체로는 중국 내 최초 상장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2020년 세계 최대 완성차 그룹 중 하나인 폭스바겐이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급부상했으며, 현재 화웨이, 보쉬, 리비안 등 글로벌 리딩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시장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배터리 제조사가 아닌 “친환경 에너지를 모두에게 제공하는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정의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를 ESS에 저장해 공장을 가동하는 ‘제로 탄소 산업단지’ 모델로 생산 과정 자체를 친환경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슬로바키아와 모로코 등 신규 공장에 이 모델을 적용해 탄소 배출 최소화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

◆농업에서 기술로… 안후이 성장 공식

지난해 안후이성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5조3000억위안(약 1188조원)으로, 5년 전(약 3조8000억위안)에 비해 37% 성장했다. 한국 전체 GDP(약 2676조원)의 약 40% 규모다.

안후이성이 이토록 빠르게 기술 강성으로 올라서게 된 배경에는 성 정부의 파격적인 산업 육성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성도인 허페이는 시 정부가 직접 유망 기업에 베팅하는 ‘벤처캐피털형’ 투자 전략을 선보여 시장에서 이른바 ‘허페이 모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니오였다. 2020년 니오가 자금난으로 파산 직전에 몰렸을 때, 허페이시는 70억위안이라는 거액을 전격 투자했다. 허페이로 니오의 본사를 이전하고,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이 투자 조건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니오를 기사회생시킨 동시에, 허페이를 세계적인 전기차 생산 거점으로 탈바꿈시키며 시 정부에 막대한 산업 생태계를 안겨주었다.

 

혁신 환경은 자연스럽게 전국의 인재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중국 최고의 명문인 중국과학기술대학과 허페이공업대학 등은 ‘허페이로 오세요’와 같은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고도의 기술 인력을 기업에 수혈하고 있다. 충칭에서 허페이로 건너와 통역사로 활동 중인 한 청년은 “이미 성장이 끝난 연안 도시들과 달리 허페이는 매일 변화하며 새로운 기회를 주는 곳”이라며 “도시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활력이 전국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안후이성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서포터’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의 애로사항을 신속히 수렴·개선하기 위한 전용 창구를 구축하는 등 행정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다만 이러한 전폭적 지원은 국가적 과제 그리고 중앙정부가 안후이성에 부여한 미션과 궤를 같이하는 기업에 집중된다.

뤼샤오메이 안후이성 인민정부 외사판공실 부주임은 “우리의 행정력은 국가가 부여한 과학기술 혁신, 신산업 성장, 개혁개방과 녹색 성장의 미션 아래, 기업이 불편 없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맞춰져 있다”며 “기술이 인간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돼 기술을 전략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