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헌재, 권한 다툼보다 기본권 보호 위한 개선안 마련을

2심 “헌재 심리 지연은 기본권 침해”
귀 닫은 헌재, 옳은 지적은 경청하길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내 권익 보장’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헌법재판소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 요청서’를 보낸 사실이 그제 공개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심리 중인 형사 사건 피고인 진천규 통일TV 대표가 “기소 근거가 된 남북교류협력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재에 낸 헌법소원 결론이 4년 넘게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행법상 피고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경우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 심리는 정지된다. 재판부는 이 같은 헌재의 늑장 행태가 신속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 아닌지 따져 보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법원에 따르면 진씨는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통일부 승인 없이 북한 서적 등을 국내로 들여왔다가 1심에서 벌금 300만원 선고를 받았다. 항소심 개시 후 그는 “북한 물품 반입 때 통일부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헌재의 문을 두드렸다. 헌법재판소법 38조에 의하면 헌재는 사건 접수 후 180일 안에 결정을 선고해야 한다. 다만 이는 처벌 등 불이익이 뒤따르는 강행 규정이 아니다 보니 1988년 헌재 창설 후 지금까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점을 잘 아는 법원이 헌재의 ‘급소’를 건드린 것 아닌가 싶다.



헌재는 재판부 요구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헌재가 심리 중인 사건에 법원이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 확정판결도 헌재 위헌심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는 재판소원 제도가 지난 3월 이른바 ‘4심제’ 논란 속에서도 시행됐다. 이로써 외견상 헌재가 대법원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 그래서인지 헌재는 이번 법원의 의견서 제출 요청을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되찾으려는 법원의 ‘반격’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이 지체되면서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

‘대법원과 헌재 중 누가 더 상급 기관이냐’를 둘러싼 다툼은 거의 40년 가까운 해묵은 논쟁이다. 재판소원제 도입에 따라 헌재는 법원 판결을 취소할 권한을 갖게 됐다. 우리 헌법이 대법원과 헌재 간에 우열을 정하지 않은 것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보장하려는 의도로 풀이함이 옳다. 헌재 심리나 결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법원도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보장함이 마땅하다. 법원·헌재 두 기관이 볼썽사나운 권한 다툼 말고 국민 기본권의 더욱 철저한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