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E의 샘플을 공급한다. 샘플은 메모리 제품을 양산하기 전 고객사들이 미리 성능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시제품으로 SK하이닉스가 제품 생산 기술력을 완성했음을 의미한다. 지난달 29일 HBM4E 샘플을 내놓은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까지 샘플 제작에 성공하면서 HBM 시장을 둘러싼 양사의 패권 다툼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HBM4E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들에 공급했다고 18일 밝혔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신제품은 이전 세대인 6세대 제품 HBM4 대비 성능과 전력 효율을 모두 한 단계 끌어올렸다. HBM4E 샘플은 핀당 최대 16Gbps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구현한다. Gbps는 1초당 전송되는 기가비트 단위의 데이터다. 처리 숫자가 높을수록 1초당 보내는 데이터가 많다는 뜻이다. 전작인 HBM4의 속도가 평균적으로 12Gbps인 점을 고려하면, 33% 정도 속도가 빨라지는 셈이다. 성능을 올리면서도 전작 대비 에너지 효율은 20% 이상 개선했다. 적은 전력으로도 더 많은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인공지능(AI) 학습과 추론에 효과적이다.
SK하이닉스가 신제품의 또 다른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설계 최적화’와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이다. 우선 회사는 HBM4E에 성능을 극대화한 설계를 적용, 메모리 반도체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데이터 전송 지연’을 상당 부분 줄였다. SK하이닉스 측은 기존 서버 대비 데이터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최신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해당 공정은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공간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해 안정성을 올리는 기법이다. SK하이닉스 측은 MR-MUF 공정을 적용해 12단 적층 기준 48GB(기가바이트) 용량을 구현하는 동시에 구조 안정성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의 HBM4E 샘플 출하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선 차세대 메모리 패권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HBM3에서 치고 나온 이후로,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에 견줘 기술력과 양산 능력이 월등히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4∼2025년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한 것도 HBM 기술력 덕분이었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5세대 메모리 HBM3E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시장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다.
그러나 HBM4 이후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삼성전자가 반격을 시작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HBM4 양산·출하와 HBM4E 샘플 공급, HBM5 모크업(모형) 공개에서 모두 SK하이닉스를 앞질렀다. 시장에선 HBM4까지는 SK하이닉스의 우위가 계속되겠지만, HBM4E부터는 양측의 우열을 쉽게 가릴 수 없다고 내다본다.
SK하이닉스는 회사가 보유한 기술 경쟁력과 양산 역량을 토대로 차세대 HBM 시장에서도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업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과 양산 역량을 HBM4E 제품에서도 이어가 AI 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