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양해각서(MOU) 전문이 공개된 뒤 이란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진전은 없이 이란에 전적으로 유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비핵화와 관련한 건 60일간 이어질 후속 협상으로 미뤘고, 호르무즈해협 통항료는 60일 동안만 면제된다. 전쟁 전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으로 미국이 사실상 얻은 것이 없는 셈이다.
17일(현지시간) 공개된 MOU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운 핵문제와 관련해 성과가 없다. 이란이 핵무기를 생산·개발하지 않겠다는 선언적인 문구만 있을 뿐 고농축우라늄을 신뢰할 만한 제3자나 미국의 검증하에 이란 내 혹은 해외에서 파괴하는 등 주요 쟁점이 되는 문제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1년 넘게 이란과 핵 협상이 진행 중이었지만 해결되지 못해 전쟁까지 가게 된 문제들이 60일 안에 해결되기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MOU에 따라 미국은 서명 즉시 이란 해상 봉쇄를 푼다. 반면 이란은 30일 안에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전쟁 전 수준으로 복원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기뢰 제거 완료에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앞으로 협상을 통해 통항료가 없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이날 국영TV 인터뷰에서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OU에 포함된 재건기금 3000억달러(약 465조원)도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이란과 체결한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가 이란에 현금 지원을 했다고 비판하며 이번 합의는 다르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투자 및 개발 프로그램 조성을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이란에 대한 즉각적인 금전 보상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이 기금은 걸프국들을 포함해 한국 등 외국 기업들의 참여로 조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똑바로 행동한다면, 사람들이 이란에 투자를 원할 경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란의 합의 이행이 재건기금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외 이란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상당하다. 미국은 즉시 제한적인 이란 원유 수출 제재 면제를 제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향후 연간 600억달러가 넘는 석유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미국은 협상 진전에 따라 동결된 이란 자산도 단계적으로 해제하기로 했다.
합의문 13항은 미국과 이란은 MOU에 서명한 뒤 1항(군사작전 중단)과 4항(해상 봉쇄 해제), 5항(60일간 통항료 없이 호르무즈해협 개방), 10항(원유 수출 제재 면제), 11항(동결자금 해제 관련 합의 시작)의 이행 시작을 조건으로 나머지 조항들에 대한 최종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결국 이란이 호르무즈해협만 열면 미국이 해상 봉쇄 해제, 원유 수출 허용 등을 미리 양보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대이란 제재 해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양보를 언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최종 합의의 일부로 합의된 일정’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결의, 미국의 1·2차 독자 제재를 포함한 이란에 대한 모든 종류의 제재를 종료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이란과의 비핵화 합의를 조건으로 미사일 개발, 테러,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등 모든 대이란제재를 없앤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이 주요 참여국이기는 하지만, 유엔 안보리와 IAEA 이사회는 엄연히 미국과는 별개의 국제기구인 만큼 미국이 이를 약속할 능력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 등 대리 세력 문제와 이란 미사일 프로그램 규제 내용은 아예 빠졌다.
미 공화당 빌 커시디 연방 상원의원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등 이란 강경노선을 이끌어온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언급하며 “레이건이 무덤에서 뒤척이고 있다. 최근 수십년간 최악의 외교정책 실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