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려 마중 나온 인사들과 차례로 손을 맞잡았다.
김민석 국무총리와는 말없이 웃으며 악수만 했고,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악수할 때는 “수고했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정 대표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이 대통령을 맞았다. 지난 9일 이 대통령 출국 당시 청와대의 ‘요청’으로 정 대표가 환송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뒤 아흐레 만에 연출된 장면이다.
‘환송 배제’ 논란으로 번졌던 당청 간 미묘한 기류는 이날 귀국 환영 행사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그러나 정 대표의 연임 여부와 차기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여권 내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고, 당대표 및 최고위원 주자들의 출마 선언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권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정 대표를 둘러싼 당청 간 거리감과 ‘명심(이 대통령 뜻)’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鄭·金, 나란히 李 공항 맞이
공항에는 정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김 총리 등이 나와 이 대통령을 맞았다. 이 대통령이 떠난 뒤 김 총리가 행사장을 벗어나며 정 대표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정 대표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여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당초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출국길 환송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청와대의 요청 때문이었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수습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이유로 청와대가 정 대표에게 불참을 요청한 것이다. 정 대표의 빈자리를 김 총리가 채우면서 차기 당권 주자로서 ‘명심’을 등에 업은 것 아니냐는 뒷말이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통상 총리는 환송이 아닌 귀국 마중을 나오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당청 관계가 악화된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역대 여당 지도부는 통상 대통령 환송 행사에 참석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청와대가 불참을 요청했더라도 정 대표가 정무감각을 발휘해 행사에 나가 불필요한 당청 갈등 상황을 연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모르는 소리다. 대통령 경호구역은 제아무리 여당 대표라 해도 사전 허가가 없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 대표는 이날 공항 영접을 마친 뒤 국회 의원총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며 “다 흔들리며 젖으며 사는 게 인생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 연임 도전 포기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대해서는 “역대급 외교 성과”라며 “당정청이 똘똘 뭉쳐 한반도 평화 정착과 번영을 위한 이 대통령의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鄭, 24일 전후 거취 표명할 듯
이 대통령의 귀국을 계기로 여권 내 당권 경쟁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당권을 둘러싼 신경전은 이 대통령의 해외 일정 중에도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왔다. 보통 대통령이 해외 일정 중이면 여당 지도부는 정상외교 성과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수 있도록 정치적 메시지를 자제하는 편인데 이번엔 지방선거 평가 및 차기 당권 경쟁 이슈가 맞물리며 집안싸움 양상까지 노출됐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누가 당대표가 되든 정부의 성공에 기여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며 “그걸 따르지 않는 지도부와 당원은 또 다른 당원과 다수의 국민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 대표가 ‘출마 여부는 당원과 국민에게 달려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데 대해 “한가한 얘기”라며 엄중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5선의 박지원 의원은 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KBS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잘했는데 당이 잘못하고 있다면 당연히 (당대표가) 물러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정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죽어도 나갈 것 같다”며 “그가 나오면 국민과 당원이 심판하면 된다”고 했다.
정 대표는 아직 연임 도전 여부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전당대회 준비위원회가 26일 꾸려질 예정이어서 정 대표가 24일을 전후해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친청(친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문정복 최고위원의 연임 도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계에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이건태 의원의 최고위원 출마가 유력시된다. 이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정 의원의 ‘90도 인사’를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며 “대통령에게까지 정치기술을 선보인다. 솔직히 별로다”라고 했다. 그는 “말로만 하는 칭송·친명 듣기 싫다”고도 했다.
당내에서는 정 대표가 연임 도전을 공식화할 경우 친청계와 비당권파 친명계 간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대표의 귀국 환영 행사 참석으로 최악의 충돌은 일단 피했지만, 한 초선 의원은 “정 대표가 공항에 간다고 갈등이 잦아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 모두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친명”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도 비당권파에서는 대결 구도를 희석하려는 발언 아니냐는 불쾌감이 감지된다.
김 총리는 19일 전북 군산에서 열리는 새만금 현장 간담회에서 청년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김 총리의 호남행은 이번 주에만 세 번째다. 지난 16~17일에는 전남 나주·보성·여수·광양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