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폭력 피해 학생이 즉각적으로 고통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직결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19일 나왔다. 피해자의 감정 표현 정도만으로 심리적 내상의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BTF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문제연구소 연구진은 학술지 ‘한국청소년연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2025년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참여한 피해 학생 378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피해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양상이 폭력 유형에 따라 이질적인 궤적을 그린다는 점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서적 폭력과 성폭력은 피해 학생이 자각하는 고통의 단계를 거쳐 외상 후 스트레스로 발현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사이버폭력은 작용 기제가 달랐다. 피해 학생의 표면적인 고통 호소가 미미하더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 지수를 직접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이버폭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 없이도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직결되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감정 마비(Emotional Numbing)’와 ‘만성적 과각성’의 결과로 풀이된다.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폭력의 주체가 익명성에 숨어 불특정 다수로 확장되고, 피해 학생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반복되는 혐오 콘텐츠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극도의 무력감에 직면한다.
방어 기제로 감정을 차단해 겉으로는 평온한 듯한 착시를 일으키지만, 무의식 영역에서는 디지털 기기 접속 행위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해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활성화하고 편도체 활동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킨다.
결과적으로 만성적 수면 장애와 정서적 소진을 유발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고착화한다.
실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집단 내부 비교 데이터가 이를 방증한다. 사이버폭력 피해가 포함된 학생의 외상 후 스트레스 평균은 2.15점으로, 사이버폭력 피해가 없는 일반 학교폭력 피해 학생 평균 1.60점을 크게 웃돌았다.
사이버폭력이 학생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과 뚜렷한 관련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피해 학생이 스스로 ‘힘들다’고 말하는 정도만으로 사이버폭력의 위험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사이버폭력 피해는 온라인에 남는 게시물과 이미지, 재유포 가능성 때문에 사건 이후에도 불안과 위협감이 지속될 수 있다. 플랫폼의 방관 속에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발자국은 이를 영구적 트라우마로 변질시키는 촉매가 된다.
이종익 BTF푸른나무재단 상임대표는 “학교폭력 피해는 하나의 절차로 처리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피해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외상 반응을 남길 수 있는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사이버폭력은 피해 학생이 고통을 크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피해 콘텐츠 삭제·차단, 확산 방지, 재유포 예방, 신고 후 조치 결과 확인 등 피해 학생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플랫폼 기반 보호체계가 내실 있게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