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넘어선 가운데 지수 상승을 이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의 자금 집중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1일 KB증권 ‘역사가 말하는 주도주 쏠림 #2. 쏠릴 때가 좋을 때다’ 보고서에 따르면 버블 랠리 후반부에는 시장을 이끄는 주도주로 자금이 더욱 몰리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인공지능(AI) 중심 장세를 1990년대 후반 미국 닷컴버블 당시와 비교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증시는 헬스케어와 금융, 정보기술(IT) 업종이 함께 상승을 이끌었다. 1999년 들어서는 시장의 관심이 닷컴 관련주로 급격히 좁아졌다. 실적이 좋아도 닷컴 기업이 아니면 주가가 오르지 못했고, 뚜렷한 실적이 없어도 인터넷 사업 계획을 내놓은 기업에는 매수세가 몰렸다.
국내 증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이 연구원의 진단이다.
지난해 상법 개정 기대와 신약 개발 동력으로 주목받았던 금융·헬스케어주는 실적 개선 전망에도 최근 AI 랠리에서 밀려났다. 반대로 AI나 로봇 사업 진출 가능성이 알려진 기업은 실적과 관계없이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 연구원은 이를 무료 인터넷전화 사업에 대한 기대만으로 주가가 100배 넘게 올랐던 닷컴버블 당시 새롬기술과 비교했다.
그가 경계한 것은 상승 종목이 여러 업종으로 넓어지는 ‘종목 확산’이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종목이 함께 오르면 증시의 기초 체력이 좋아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 연구원은 버블 랠리 후반부에는 다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봤다. 2000년 3월 닷컴버블 붕괴를 앞두고도 기존 주도주에 집중됐던 자금이 다른 종목으로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승장이 끝났다는 설명이다.
현재 AI 관련 기업은 닷컴버블 당시 기업들과 달리 실제 이익 성장까지 뒷받침되고 있어 주도주 쏠림이 더 오래 이어질 여건을 갖췄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연구원은 버블 랠리 후반부에 주도주 집중이 강해졌던 과거 사례를 들어, 쏠림 자체를 피하기보다 시장 흐름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 대형주의 영향력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1.42포인트(0.13%) 내린 9052.42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전인 18일에는 199.60포인트(2.25%) 오른 9063.84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했다.
19일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장중 처음으로 8000조원을 넘어섰다. 오후 들어 지수가 하락하면서 종가 기준 합산 시총은 7941조6724억원으로 내려왔다. 코스피 시총은 7398조8747억원, 코스닥은 542조7977억원이었다.
국내 증시 시총은 지난 4월 27일 6000조원을 넘어선 뒤 8거래일 만인 5월 11일 7000조원을 돌파했다. 다시 26거래일 만에 장중 8000조원에 도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총은 19일 종가 기준 4039조4919억원이었다. 삼성전자가 2069조5826억원, SK하이닉스가 1969조9093억원으로 코스피 전체 시총에서 각각 27.97%, 26.62%를 차지했다. 두 종목을 더하면 54.59%에 이른다.
소수 대형주의 움직임이 지수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도 뚜렷해졌다. 19일 삼성전자는 2.34% 내렸지만 SK하이닉스는 2.94% 올랐다. 코스피는 장 초반 9385.59까지 뛰었다가 한때 8831.72까지 밀리는 등 하루 동안 550포인트 넘게 출렁였다.
보고서가 말한 ‘종목 확산 경계론’을 개인 투자자의 분산투자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특정 종목의 비중이 커질수록 해당 기업의 주가 변화가 지수와 투자상품 전체에 미치는 충격도 커진다. 주도주 쏠림이 상승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함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