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식칼럼] 저출산 스트레스로부터 탈출

시대·환경 따라 ‘적정 출산’ 달라
출산율 하락세 전세계적인 추세
정책 목표 숫자보다 ‘가치’에 초점
양육·교육 책임지는 사회 만들어야

만약 대한민국에 저출산 대책이 없었다면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낮았을까. 한때는 정책이 출산율의 추가 하락을 막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0명대 출산율이 장기간 지속된 현실을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정부는 오랫동안 양육비 부담, 돌봄 부담,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난임 등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보고 수많은 대책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왔다. 그럼에도 정책과 출산율 사이의 뚜렷한 상관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정책 수준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책과 원인 사이에 미스매치가 있었을 수도 있다. 주거와 노동시장, 교육체계 등 보다 근본적인 구조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 

사실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도 출산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때 출산율 반등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던 프랑스와 스웨덴도 포함된다. 역사와 문화, 제도와 복지 수준이 서로 다른 국가들에서 비슷한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저출산의 배경에 우리가 익숙하게 이야기해 온 원인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실 인류는 시대마다 서로 다른 출산 규범을 만들어 왔다. 중세 유럽 여성들은 평균 6∼8명의 자녀를 낳았다. 높은 영아사망률로 태어난 아이가 모두 성인까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고, 농업과 가내수공업에 필요한 가족 노동력을 확보해야 했다. 당시에 이는 과도한 출산이라기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생산과 노동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아동노동 금지와 의무교육 확대로 출산은 부담과 비용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5명 안팎이던 출산 수준은 점차 3∼4명으로 낮아졌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적정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1968년 혁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이 확산되면서 결혼과 출산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평균 자녀 수는 인구대체수준인 2.1명 이하로 낮아졌다. 여기에 20세기 후반 이후 정보혁명과 디지털혁명은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 가족이 제공하던 관계와 소속,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온라인 네트워크가 대신하면서, 1자녀나 무자녀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맞는 적정한 출산 수준을 선택해 왔다. 한국 사회의 1명 이하 출산 역시 현재의 사회·경제·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결과일 수 있으며, 미래 세대의 선택 또한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변화를 다시 한번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어느 시대든 출산 수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처한 조건과 환경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오늘의 초저출산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출산 수준의 변화에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저출산이 국가적 위기로 반복해서 규정될수록 결혼하지 않은 청년과 아이를 낳지 않은 부부는 책임을 묻는 시선을 받게 된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면서도, 사회는 끊임없이 그 선택을 평가한다. 국가가 저출산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결혼과 출산은 축복보다 부담으로, 희망보다 책임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렇다고 저출산 대책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선택하는 출산 수준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출산이라도 소중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가 출산율이라는 숫자를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출산이 부담과 희생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양육비와 돌봄은 물론 안전과 건강, 교육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전 과정에서 필요한 제도와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사회가 출산을 존중하고 끝까지 함께 책임진다는 신뢰를 쌓는 일이다. 결국 저출산 대책의 본질은 출산율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