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넘나드는… 황홀한 몸짓의 향연

발레 도르트문트 첫 내한 공연
에크만作 ‘한여름 밤의 꿈’ 무대
비범한 연출·헌신적 춤 돋보여

알렉산더 에크만과 발레 도르트문트의 ‘한여름 밤의 꿈’(사진)이 LG아트센터 서울(6월11∼14일)과 화성예술의전당(6월19∼20일)에서 국내 초연됐다. 천재 안무가의 비범한 상상력과 연출, 탁월한 무용수들의 헌신적인 춤이 축제와 꿈의 경계를 허무는 압도적 무대를 만들어냈다.

백야(白夜)의 나라 스웨덴 출신인 에크만이 북유럽 명절 하지(夏至) 축제를 소재로 만들어 2015년 로열 스웨덴 발레단이 초연한 이 작품은 기나긴 밤 내내 함께 마시고 춤추다 잠드는 공동체적 경험이 배경이다. 스타 안무가 에크만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춤판을 빚었다. 한 장면 안에서 여러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고, 빼곡한 디테일로 채워진 무대는 거대한 세트장 같다. 무대를 가득 채운 건초 더미와 수십 미터는 됨직한 길이의 대형 테이블, 사람보다 큰 청어 모형 등이 등장한다.

1막 무대는 여름 내음이 물씬 풍긴다. 무대를 뒤덮은 황금빛 건초 더미 위에서 무용수들은 몸을 던져 뒹굴며 춤을 추고 흥을 돋운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꽃과 건초로 장식한 기둥, 메이폴(Maypole)이 솟는다. ‘5월의 나무’라는 뜻을 지닌 하지 축제의 심장이다. 사람들은 그 둘레를 둥글게 돌며 춤춘다. 축제가 무르익으면 만찬이 시작된다. 거대한 식탁에 줄지어 앉은 남녀는 점잖게 식사를 시작하나 어느 순간 술의 신 바쿠스가 강림한 듯 흐트러진다.



2막에서는 무대 위에 설치된 전자 달력·시계가 부각된다. 점멸하는 조명과 라디오·TV 채널 신호를 찾는 듯한 굉음 속에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만찬에서 먹고 마시다 잠든 남자는 다시 축제 날 아침처럼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건초를 끌어안고 춤추던 일상은 사라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테이블이 떠오르고 물고기가 허공을 헤엄치는 무대가 펼쳐진다. 머리 없는 양복남, 공중에 매달린 침대, 역시 허공으로 솟아오른 긴 테이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의 화폭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쏟아진다. 그리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청어 아래에서 무용수들은 굉음을 내며 마치 발작하듯 춤을 춘다. 비슷한 춤을 떠올리기 힘든 수준인 광란의 춤판은 어느 순간 잦아들고, 무대는 다시 비워진다. 남녀는 사랑을 나누고, 두 여성 무용수가 양편에서 나와 천천히 무대를 가로지른다. 걷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춤이 된다. 그리고 에크만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한여름 밤의 꿈’의 절정이 시작된다. 그토록 많은 소도구와 장식·이미지가 범람했던 무대는 사라지고 모든 무용수는 태초의 차림만으로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지닌 군무를 춘다. 꾸밈없는 몸에서 나오는 춤은 보는 이에게 특별한 감정의 북받침을 안긴다.

‘한여름 밤의 꿈’의 또 다른 비범함은 작곡가 미카엘 칼손의 음악에서 나온다. 무대 위 일곱 명의 연주자가 현악사중주와 피아노, 타악기, 전자음을 엮어 독특한 질감을 만든다. 그 위로 고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성 보컬이 마치 판소리 구음(口音) 같은 창법으로 노래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발레 도르트문트는 에크만의 천재성을 헌신적인 춤과 연기로 충실히 담아냈다. 클래식 발레의 엄격한 신체 통제력을 뼈대로, 복잡하게 얽힌 장면들을 일사불란하게 풀어낸다. 마치 ‘컷’ 없이 영화 촬영을 완성해내듯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춤과 연기를 펼쳐낸다.

현실과 초현실이 뒤섞인 이 작품을 두고 에크만은 누구나 자유롭고 생생한 꿈을 꾸며, 그 꿈속에서는 어떤 일이든 가능하고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