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비핵화 협상의 기시감

美·이란 종전… 관건은 ‘60일 협상’
‘北 단계적 비핵화’ 구상 때와 비슷
반복되는 실패에도 핵 해결 노력
정책 결정자·전문가의 노력 소중

미국·이란 종전 합의 양해각서(MOU)를 보면서 2019년의 북핵 협상을 떠올렸다. 60일간 협상을 통해 이란이 핵문제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할 때 그에 맞춰 제재를 풀겠다는 MOU 내용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정책대표(국무부 부장관 역임)는 2019년 1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상응 조치를 하는 ‘단계적(step by step)·동시적 비핵화’ 구상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꾸준히 주장해 온 ‘점진적(incremental) 비핵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외교가에 논란이 적지 않았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비건 대표가 언급한 ‘단계적 비핵화’는 북한의 ‘점진적 비핵화’와 다르다고 설명하고, 북한이 제재만 완화하고 비핵화를 회피하도록 방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결국 비핵화의 목표를 미국이 원하는 만큼 밝히지 않고 노후한 영변 핵시설 파괴에 한정했고,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본격적인 대이란 핵협상은 60일간 진행된다. 물론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비핵화를 둘러싼 ‘기싸움’이 얼마나 어려운지 북한 비핵화 협상을 통해 짧게나마 지켜본 입장에서 과연 이 느슨한 비핵화 조치 대 제재 완화의 구도가 60일 이내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부터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트라이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앤서니 루지에로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만났다. 민주당·공화당 정부에서 제재·비확산 전문가로 20여년간 일한 그는 2018년 중반부터는 트럼프 행정부 NSC의 북한 담당 국장으로 일하며 당시 협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인물이다.

제재 전문가인 그는 일단 이란 제재 해제와 관련, “단순한 원유 (수출) 제재 완화나 수출 허가를 넘어서는 조치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경제 전반에 걸쳐 매우 복잡한 제재망이 형성돼 있고, 이를 풀어 나가는 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란의 비핵화 약속 대 상응 조치 제공이 60일간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는 분석이다.

더 나아가 이번 협상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갖는 함의에 대해 그는 “미국이 북한과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제재 완화를 논의하는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솔직히 현재 제재가 북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NSC에서 북한 정보 분석을 한 그는 “지금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과거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수준에 도달해 있다”며 “(이란만큼이라도) 제재 완화나 그와 유사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북한 핵문제에 정파적 시각을 넘은 ‘현실론’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의 언급은 7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한·미의 여러 전문가 간 거의 이견이 없는 내용이다.

이란이든 북한이든 비핵화 문제만 언급하면 결국 회의감과 무력감이 앞선다. 정책결정자들이든, 전문가들이든, 이 문제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이든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했고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금 다르다. 그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이 난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기존 외교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시도가 이란 핵문제든 북한 핵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란 핵의 뿌리를 뽑겠다고 시작한 이번 전쟁이 이란에 호르무즈해협의 전략적 가치만 재확인시켜줬을 뿐, 핵문제 해결에는 실질적인 진전을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하되 무기력과 냉소에 빠지지 않고 이 문제를 꾸준하게 다뤄온 정책결정자와 당국자, 전문가들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