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불붙인 선관위 원포인트 개헌… 野 ‘정국 블랙홀 될라’ 난색 [선관위 사태 후폭풍]

“개헌” 직접 언급… 논의 수면위로

김민석 총리도 “정파적 접근 안돼
여야·국민 토론으로 풀자” 힘 실어
여권선 이미 TF서 개헌 논의 시작

국힘 “개헌보다 특검” 강조하지만
하반기 원구성·조작기소 특검법 등
국정 주도권 뺏길 가능성에 위기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촉발한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감시와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선관위에 대한 대수술 필요성에 여야가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원포인트 개헌’을 언급하면서 공론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국민의힘이 개헌보다는 특검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실제 논의가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여야는 21일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각급 선관위의 상임위원 규모를 늘리고, 외부 감시 체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관위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이번주 본격 가동되는 만큼 사실 확인과 책임 소재 규명이 끝난 뒤에는 선관위 조직 체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점검하고, 시스템 개혁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명선거’ 무색한 문구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부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중앙선관위 경기 과천청사 앞에 세워진 ‘公明選擧(공명선거)’ 비석. 과천=최상수 기자

◆직접 발의 의사 밝힌 李대통령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구인 만큼 감사원의 직무감찰 등 별도의 견제 장치를 도입하려면 개헌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선관위는 대선 ‘소쿠리 투표’ 논란, 자녀 특혜 채용, 외유성 해외 출장 의혹, 전국 단위 선거 때 휴직자 증가 등 각종 구설에 휘말려왔다. 자정 능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은 만큼 개헌을 통해서라도 칼을 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선관위원을 9명(대통령 3명 임명·국회 3명 선출·대법원장 3명 지명)으로 구성하도록 한 내용도 개헌을 통해서 수정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발의하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걸 봐가면서 정부도 입장을 정하겠다”고 ‘원포인트 개헌’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보조를 맞췄다. 김 총리는 21일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송파구 인근 한 대학에서 ‘선관위 개혁 토론회’를 열고 “개헌을 통해서라도 선관위의 독립성은 존중하되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하는 쪽으로 가는 것만이 답이 아닌가”라며 “원포인트 개헌이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선관위를 해체하기도 어렵고, 과거 내무부 산하의 선관위로 가기도 어렵다”며 “원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것을 정파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여야와 국민이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토론을 해서 풀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난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 반대로 성사 미지수

 

정치권 개헌 논의가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야 모두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향후 국정조사와 입법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개헌 범위와 시기 등에 대한 각론 조율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 등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의 개헌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가 참여하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별도로 당내 ‘국민 참정권 수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개헌을 포함한 선관위 개혁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선관위의 사건 보고를 청취·점검하고 선거관리 제도 개선 방향과 개헌 필요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 정진욱 의원도 지난 9일 외부 기관의 감사 권한과 선관위의 권한·책임을 헌법에 명시하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에 대한 감독 강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헌에 대해선 분명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헌이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올 하반기 원 구성이나 ‘조작 기소’ 특검법 협상 등에서 여권에 국정운영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단 개헌이 성사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여권이 수시로 개헌 시도를 재개할 것이란 의구심도 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 추진을 언급했다.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개헌보다 특검이라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관련 헌법 조항을 고치는 ‘부분적 개헌’ 등 졸속 누더기 개헌에 명확히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