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군에는 국내 유일의 지리 전문 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이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36년간 지리교사로 교단에 선 양재룡(80) 관장이 퇴직 후인 2007년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교과서 속 암기 과목으로 여겨지는 지리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박물관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고지도(古地圖)와 독특한 지구본 등 5500여점이 빼곡하다. 박물관 이름은 자신의 호(號) ‘호야(豪野)’에서 따왔다.
충남 계룡산 자락이 고향인 양 관장이 연고가 전혀 없는 영월에 박물관을 세운 이유는 이곳이 국내 지리 답사 1번지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2년간 전국을 돌며 부지를 고민했다는 그는 “영월은 한반도 지형과 지질, 하천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천혜의 지리 교육장”이라며 “우리나라 광물의 표본실이면서 동시에 단종 유배지, 근현대 산업화를 이끌었지만 쇠락한 광산촌 등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설립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문을 연 지 5년이 되는 해인 2013년에는 한 달 방문객이 10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한 외진 시골마을에 박물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특히 양 관장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영월 주요 지역을 둘러보고 역사를 배우는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다. 양 관장은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호시절도 잠시, 다음해부터 내리막이 시작됐다. 각종 사건사고로 수학여행이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확산하면서 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최근 한 달 방문객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 관장은 “10년 넘게 적자가 누적돼 집까지 팔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우리 부부가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 연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면서 지금까지 박물관을 지켰다”며 그간 고생도 털어놨다.
양 관장에게 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누렇게 바랜 지도 한 장을 가리켰다.일본이 1895년 제작한 군사용 정밀지도 ‘일청한군용정도(日淸韓軍用精圖)’라고 했다. 양 관장은 “동해상에 국경선이 그려진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개된 지도”라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해상 국경선 안에 독도가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일본이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중요한 사료”라고 힘줘 말했다.
이 지도는 양 관장이 2007년 충북 충주시 한 골동품 상점에서 가져왔다. 독도를 조선 땅으로 표기한 일본 지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상점 주인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양 관장은 “고지도를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도에 관심이 커졌다”며 “다양한 지도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물론 해외에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 모인 자료들은 독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호야지리박물관은 4월부터 ‘한국 영토, 독도’ 지도특별전 전국 순회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의 지도가 그 진실을 토(吐)하다’를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일본이 16세기부터 해방 이전까지 350년 이상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해 지도에 표기해 온 사례를 만나볼 수 있다. 일청한군용정도 원본도 전시된다. 다음 달 15일까지는 충북 제천시 지적박물관에서, 10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는 경북도청 동부청사에서 순회전이 이어진다.
양 관장은 “대부분 일본 지도를 제외한 세계지도에 독도가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독도 영유권 분쟁은 지도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도를 바로 읽고 세계지도의 흐름을 주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