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보다 우선 순위 먼저”…희귀질환 치료제, 허가 이후에도 건보 적용 ‘하세월’

정부가 올해 하반기 탈모약에 건강보험 적용 방침을 밝히자 의료계를 비롯해 환자∙시민단체도 반발하는 가운데, 희귀질환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신약 허가 이후에도 건보 적용이 지연되는 사례가 있어 희귀질환자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22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식약처의 신약 허가 이후 급여화 적용 절차에서 지연되고 있는 희귀질환 치료제로 폰히펠-린다우 증후군이 복용하는 ‘웰리렉’, 단장증후군의 ‘가텍스주’, 특발성폐섬유증 ‘오페브’ 등이 공식 치료제임에도 급여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 새 치료제가 실제 환자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식약처 허가 이후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 보건복지부 고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이들 희귀질환 치료제는 경제성 평가를 통한 비용∙효과성 입증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식약처의 신약 허가 이후에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종양 억제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중추신경계를 포함해 신장∙췌장 등 장기에 여러 종류의 종양이 발생하는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 치료제인 웰리렉은 지난해 말 세 번째 급여 도전에 나섰으나 끝내 실패했다. 2023년 5월 국내에서 식약처 허가를 받은 뒤 3년이 지나도록 비급여 항목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는 급여화에 포함됐다. VHL의 유일한 표적 치료제로 평가받는 웰리렉은 한 달 약값만 2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가까이 비급여인 약도 있다. 호흡곤란 등을 동반하는 특발성 폐섬유증(IPF)의 치료제인 ‘오페브’는 2016년 10월 치료제 허가 이후 아직 급여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IPF는 국내에서 최근 수년간 희귀질환 중 사망자 수와 진료비가 가장 높은 질환으로 꼽힌다. 이 약은 지난해 5월 IPF를 제외한 적응증에 한해서만 보험 급여가 등재됐다.

 

신약 허가 이후 급여에 등재됐으나, 연령 구분 등 까다로운 기준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정작 사용할 수 없는 치료제도 있다. 신경계, 뼈 등에 발육 이상을 초래하는 희귀질환인 신경섬유종증 1형의 치료제 ‘코셀루고’는 소아 환자에 한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성인 환자에 대한 적응증 확대가 이뤄졌을 뿐, 급여 적용은 되지 않고 있어 소아 시기부터 치료를 받던 환자가 성인이 되면서 급여가 중단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는 최근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시행했지만, 급여화가 늦어져 복용하지 못하는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그간 허가는 됐지만 급여가 안 된 치료제와 급여가 됐어도 급여기준이 까다로워 환자가 쓸 수 없는 ‘그림의 떡’인 치료제의 급여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희귀질환자들은 정식 치료제가 있음에도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부담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이 커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적지 않다.

 

환자단체 사이에서는 정부의 탈모약 급여화 논의에 앞서 희귀∙중증질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탈모를 겪는 이들의 어려움도 이해를 한다”면서도 “사회 전체로 봤을 때 건강보험에 대한 수용 정도 및 우선순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아직도 희귀∙중증질환자들에게는 건강보험 급여화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여전히 희귀∙중증질환자들은 높은 허들을 겪고 있다”며 “반면 탈모 문제는 잊을 만 하면 언급된다. 매우 빠르게 사안이 수면 위로 오른다. 건강보험의 중점 과제 등 방향성뿐만 아니라 제도가 신뢰를 얻으며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탈모약 급여화를)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