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에 놓인 韓 영화계… 신진 창작자엔 기회의 장”

미쟝센단편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유튜브·쇼트폼 콘텐츠 확산
새로운 제작·유통 모델 등장
신인 발굴 루트 다양해질 것”

지금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저예산 공포영화 ‘옵세션’과 ‘백룸’의 이례적 흥행 성과다. 유튜버 출신 커리 바커(26) 감독이 연출한 ‘옵세션’은 소심한 20대 청년이 짝사랑하는 여자의 사랑을 얻으려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장난감을 사는 바람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호러 영화다. 개봉 6주 차 기준 전 세계 누적 3억3000만 달러(약 5059억)의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8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제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딥 포커스: 왓츠 넥스트? - 신진 창작자를 찾습니다’에 참석한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 글로벌 프로젝트장(왼쪽부터), 김태원 넷플릭스 콘텐츠 디렉터, 엄태화 감독,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 미쟝센단편영화제 제공

또 다른 화제작 ‘백룸’ 역시 유튜버 출신 케인 파슨스(21)가 만든 영화로, 전 세계 누적 3억100만 달러(약 4614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약 106만 관객을 동원하며 공포 장르 외화로 7년 만에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20대 감독이 유튜브에 올렸던 콘텐츠를 장편 영화로 확장해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젊은 창작자들이 관객 반응과 입소문 구조를 이해한 상태로 영화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며 “기존 할리우드 데뷔 경로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와 대비되는 흐름이다. 4월 개봉한 ‘살목지’가 약 324만 관객을 동원하며 30세 감독 이상민이 주목받았지만, 이런 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데뷔한 감독들이 여전히 산업 전면을 차지한 가운데 차세대 창작자 발굴이 정체된 게 현실이다. 상업영화 제작 편수 자체가 감소한 상황에서 신인 감독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투자와 캐스팅을 성사시켜 무사히 개봉까지 이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신진 창작자 발굴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제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딥 포커스: 왓츠 넥스트? - 신진 창작자를 찾습니다’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 글로벌 프로젝트장, 김태원 넷플릭스 콘텐츠 디렉터,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상업영화 데뷔가 쉽지 않지만, 산업이 변곡점에 놓인 만큼 신진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튜브와 숏폼 기반 콘텐츠가 확산하고 새로운 영화 제작·유통 모델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기존 성공 공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다. 

 

고경범 프로젝트장은 “지금은 (한국영화) 시장이 원점에서 리셋되는 시점이라 참고할 만한 성공 모델이랄 게 없다. 오히려 많은 신인 창작자에게 기회의 시기”라며 “(투자배급사 입장에서)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루트도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전 세대 영화에서 공식을 발견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답을 찾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태원 디렉터는 “‘백룸’같은 영화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사례를 언급하며 “기획이 대단히 콘셉추얼하고, 내러티브가 다소 아쉽더라도 20자짜리 훅으로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영화를 찾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예산에 있어서도 부담이 덜한 장르인 만큼, 신인들이 입봉하기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신인 감독 등용문으로 꼽힌다. 엄태화 감독 역시 2012년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나홍진·장재현·조성희 감독 등도 이 영화제로 이름을 알렸다. 올해는 1667편 출품됐고, 그중 단 44편만이 경쟁작으로 상영됐다. 수상작은 폐막일인 23일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엄 감독은 “한국영화가 관객에게 식상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새로운 작품 보여주기 위한 고민이, 나를 포함해 산업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니, 분명 새로운 기회가 신인 감독들에게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장원석 대표는 “제2, 제3의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탄생하려면 절대적으로 신인 감독 발굴에 힘써야 한다”며 ‘엄청난 물량 공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정부가 100억원이면 99억원을 잃어도 1억원으로 한 명을 건진다는 생각으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