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취임 2년 만에 사임했다. 지난달 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노동당 참패가 결정타가 됐다.
스타머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당이 지금 묻고 있는 질문은 내가 차기 총선을 이끌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여부”라며 “답변을 기꺼이 받아든다”고 말했다. 이어 “경선이 끝나기 전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고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내 후임을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최근 10년 사이 영국에서는 6번째로 총리가 사임하게 됐다. 새 총리는 이르면 다음달 중순, 늦어도 8월 31일까진 취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노동당 대표에 오른 스타며 총리는 2024년 7월 노동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며 1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경제 둔화와 잇단 정책 유턴, 더딘 개혁 속도 등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감으로 취임 초기부터 지지율이 급락했다.
공공 재정 압박을 이유로 난방비 지원을 받아온 노인 수백만 명의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기로 한 것이나 국민 보험료 인상을 시사한 것 등이 불만을 키웠다. 우익 영국개혁당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올라서며 돌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도 자유민주당, 좌파 녹색당에도 지지자들을 빼앗기면서 스타머 정부의 국정 방향에 대한 노동당 내 반발이 커졌다. 또한 지난해 말 노동당 소속 피터 맨델슨을 주미 대사로 선정했다가 맨델슨이 미국 억만장자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임 압력이 거세졌다. 결국 지난달 초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영국개혁당에 시의회 의석 전체 5036석 중 1500석가량을 내주는 참패를 당하면서 스타머 총리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차기 총리로는 앤디 버넘 하원 의원이 지목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메이커필드 선거구 하원 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총리 최소 자격 요건을 갖췄다.
스타머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버넘 의원은 차기 총리 도전 의사를 밝히면서 “정치 변화가 국민의 삶 개선에 대한 책무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총리 교체가)당과 나라에 긍정적 쇄신 과정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장차관급 인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지지 하원 의원 수가 300명에 육박해 당 대표 경선 출마에 필요한 81명 이상의 지지 요건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당대표 경선 투표권을 가진 노동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버넘 의원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모두 앞서고 있다. 당대표 도전이 점쳐졌던 웨스 스트리팅 전 보건장관은 이날 엑스(X)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버넘과 대화를 나눈 결과 그가 총리직을 맡게 된다면 내가 주장해 온 정책들이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적었다.
스타머 총리는 앞서 당 대표 경선은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간다며 자진 사퇴를 완강히 거부했는데, 주말 사이 주요 장관들의 권유와 버넘 의원의 지지율 등을 고려해 사임을 심사숙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개혁당은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엑스(X)에 “영국개혁당은 선거를 요구한다”며 “우리는 급격한 변화를 이행할 준비가 됐다”고 썼다. 다음 총선은 총리가 조기 총선을 발표하지 않는 한 현 의회 임기가 끝나는 2029년 여름까지 치러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