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는 성과급 잔치라는데….”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대기업 임직원의 성과급으로 돌아가는 사이 서민 장바구니에는 비상이 걸렸다. 달걀 10구와 닭고기 가격은 1년 전보다 각각 38.6%, 19.4% 뛰었고 원·달러 환율도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이 달걀값을 직접 끌어올렸다는 뜻은 아니다. 달걀과 닭고기 가격은 조류인플루엔자와 공급 감소의 영향을 크게 받고, 생활물가에는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 등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한다.
고액 성과급이 일부 기업에 집중되면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면서 외식과 여가 등 서비스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도 나왔다.
임금 상승의 혜택은 일부 업종에 쏠린 반면 먹거리와 주거비 같은 필수지출 부담은 소득이 크게 늘지 않은 가구에도 돌아간다. 소득 격차가 체감물가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3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과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최근 3개월 평균 임금이 월 500만원 이상인 근로자는 371만3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6.5%를 차지했다. 상여금을 포함한 세전 임금 기준이다.
◆제조업 24%인데 음식점업은 1.4%
월 500만원 이상 근로자의 비중은 업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제조업에서는 전체 근로자의 24.0%가 월 500만원 이상을 받았다. 4명 중 1명꼴이다. 숙박·음식점업은 1.4%에 그쳤다.
최근 임금 상승에는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IT) 부문의 대규모 성과급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대기업 직원의 소득이 크게 늘더라도 음식점과 돌봄 등 저임금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같은 혜택이 돌아가기는 어려운 구조다.
월 500만원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모두 저소득층으로 볼 수는 없다. 개인 임금과 가구 전체 소득은 서로 다른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고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업종별로 크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고액 성과급이 소비를 거쳐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은이 지난 17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 상위 10% 수준의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늘어나는 충격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물가의 누적 반응은 약 5개월 뒤 0.05%포인트로 추정됐다.
평균 수준의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가 늘어났을 때는 뚜렷한 물가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특별급여가 평균적인 수준에서 고르게 증가할 때보다 일부 업종과 사업체에 고액 성과급이 집중될 때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액 성과급을 받은 근로자의 소비가 외식과 여가 등 서비스 수요를 늘리는 한편, 특정 업종의 임금 상승이 다른 업종의 임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쳐 물가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이는 과거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모형 추정치다. 고액 성과급이 늘면 물가가 반드시 0.05%포인트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달걀 10구 5222원…1년 새 38.6% 상승
서민들이 당장 체감하는 부담은 장바구니 물가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물유통정보 ‘다봄’에 따르면 이달 특란 10구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5222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8.6% 올랐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특란 30구 평균 가격은 7465원으로 1년 전보다 6.5% 상승했다. 포장 단위에 따라 가격 상승률에 큰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육계 소비자가격은 ㎏당 665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4% 뛰었다.
달걀 가격 상승에는 지난해 겨울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생산량 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산란계 살처분에 사육밀도 기준 강화, 산란 가능한 6개월령 이상 닭의 감소가 겹쳤다.
닭고기도 육용 종계 살처분으로 병아리 공급이 줄었다. 여름철 보양식 수요가 늘어난 점도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달걀 할인 지원과 신선란 수입, 닭고기 생산에 필요한 종란 수입 등 공급 확대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다음 달까지 미국산과 태국산 신선란 2112만개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최근 달걀과 닭고기 가격 급등을 이른 무더위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현재까지는 조류인플루엔자와 공급 감소의 영향이 더 크다.
폭염이 길어지면 농작물 생육이 나빠지고 가축 폐사가 늘어 이미 불안한 수급을 더 흔들 수 있다. 냉방과 저장·운송 비용도 증가한다.
폭염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히트플레이션’은 현재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올여름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위험 요인에 가깝다.
◆원·달러 환율 1537원…수입 비용도 압박
고환율도 생활물가를 누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537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한국은 원유와 곡물, 사료 등 주요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수입한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물량을 들여오는 데 필요한 원화가 늘어난다.
기업이 늘어난 비용을 자체적으로 떠안는 동안에는 소비자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공식품과 외식, 에너지, 운송비 등으로 비용 부담이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
달걀과 닭고기 가격은 공급 부족에 좌우되고 생활물가에는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반도체 호황과 성과급이 장바구니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소득 증가가 일부 업종에 집중된 반면 먹거리와 주거비 같은 필수지출 부담은 소득이 크게 늘지 않은 가구에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임금이 제자리인 가구일수록 소득에서 식료품비와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