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초고층 건축물은 시대마다 도시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1980년대 여의도 63빌딩이 서울의 새 상징으로 등장했고, 2000년대에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 하이페리온을 비롯한 초고층 주거복합단지가 잇따라 들어섰다. 2017년에는 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며 국내 초고층 건축의 기록을 다시 썼다.
최근 초고층 경쟁의 무대는 한강변 주거단지로 옮겨가고 있다. 서울 압구정에서는 최고 70층, 성수에서는 60층을 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건설사의 브랜드나 분양성뿐 아니라 높은 건물을 안전하게 지을 수 있는 구조·시공 역량이 정비사업 수주의 주요 평가 요소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국내 고층 건축의 변천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건물이 여의도 63빌딩이다.
1985년 준공된 63빌딩은 지하 3층~지상 60층, 높이 249m 규모다. ‘63’이라는 이름은 지상층과 지하층을 합친 층수에서 따왔다. 준공 당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으며 경제 성장과 도시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건설업계에는 고층 건축 기술을 축적하는 시험대가 됐다. 건물의 무게와 바람을 견디는 구조 설계부터 외벽 시공,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수직 이동, 화재 때 대피할 수 있는 방재 체계까지 기존 건축물과 다른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초고층 건물이 주거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 하이페리온, 부산 해운대의 주상복합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사무실과 달리 주거용 건물은 사람들이 하루 대부분을 머무른다. 바람에 따른 흔들림과 소음, 엘리베이터 대기시간, 화재 대피, 급수와 환기까지 생활과 맞닿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단순히 건물을 높게 올리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국내 초고층 시공 경험이 집약된 건물로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꼽힌다. 롯데월드타워는 지하 6층~지상 123층, 높이 555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2017년 2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500m가 넘는 건물에는 지상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 작용한다. 바람이 건물 외벽과 부딪칠 때 발생하는 진동을 줄여야 하고, 고층까지 콘크리트와 철골·외장재를 올리는 공법도 필요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와 피난안전구역, 방재 설비를 포함한 수직 이동 체계도 일반 건축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은 롯데월드타워에서 쌓은 경험을 청량리 일대 주거복합단지 등 초고층 주거 분야로 넓혀왔다. 롯데월드타워는 롯데건설이 성수4지구 등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초고층 기술력을 강조하는 핵심 실적이기도 하다.
초고층 건물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건물 자체의 무게보다 바람이다.
건물의 높이가 올라가면 고층부에 부는 바람은 지상보다 강해진다. 풍압이 커질 뿐 아니라 건물 뒤편에 소용돌이가 생기면서 좌우 방향의 진동도 발생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무너지지 않더라도 흔들림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입주민이 어지럼증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건물 중심부에 단단한 코어벽을 설치하고, 기둥과 코어를 연결하는 구조물을 배치한다. 건물의 형태를 바꾸거나 상층부에 진동을 상쇄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방법도 쓰인다. 실제 사업에서는 풍동실험을 통해 건물 모형에 여러 방향의 바람을 불어넣고 구조물과 보행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지진에 견디는 성능도 중요해졌다. 내진 설계는 지진이 발생해도 건물이 곧바로 붕괴하지 않고 거주자가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초고층 건물은 높이에 따라 흔들림의 크기와 주기가 달라진다. 기둥과 보, 코어벽 등 주요 구조부뿐 아니라 외벽과 천장재, 배관, 유리창 같은 비구조 부재의 탈락 위험도 함께 따져야 한다.
법정 내진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강변 대규모 주거단지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목표 성능을 어느 수준으로 잡고 이를 어떻게 검증하는지가 수주 경쟁의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초고층 건물은 구조와 시공, 바람, 지진, 화재, 엘리베이터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분야가 아니다”며 “한 분야의 설계가 달라지면 다른 분야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업 전반을 조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한강변에서는 과거 업무시설이나 랜드마크 건물에 적용되던 초고층 기술이 대규모 아파트로 옮겨가고 있다.
압구정 재건축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 사업이다. 압구정3구역은 최고 70층, 5175가구 규모로 정비계획이 마련됐다. 압구정4구역과 5구역에도 각각 최고 70층과 69층 규모의 건축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성수전략정비구역 역시 각 지구가 60층대 건축계획을 마련하면서 한강변 스카이라인 변화가 가시화하고 있다.
그중 사업 속도가 빠른 성수4지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일대에 최고 64층, 1439가구 규모의 공동주택과 부대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예정 공사비는 1조3628억원이다.
시공권을 놓고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맞붙었다. 조합은 오는 7월 5일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롯데건설은 단지명으로 ‘성수 르엘’을 제시하고 롯데월드타워 시공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외관 설계는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구조설계는 미국 구조설계사 레라와 협업한다는 구상이다.
대우건설은 한강을 접한 단지 길이 520m를 강조한 ‘더 성수 520’을 제안했다. 미국의 마이어 파트너스 등 해외 설계사와 손잡고 성수의 입지와 한강 조망을 살린 차별화된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성수4지구 수주전은 초고층 아파트 경쟁이 브랜드와 외관 디자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60층이 넘는 건물을 한강변에 지으려면 바람과 진동을 제어하는 구조 설계, 고층부 자재 운반과 콘크리트 압송, 수천 가구가 이용하는 엘리베이터, 화재 발생 때의 피난 동선까지 종합적으로 풀어야 한다.
63빌딩에서 시작된 국내 마천루의 역사는 타워팰리스와 해운대 주거단지, 롯데월드타워를 거쳐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몇 층을 더 높이느냐보다 그 높이를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공간으로 구현하느냐에 달렸다. 한강변 60~70층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건설사의 초고층 실적과 구조 안전 기술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