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교수’ 안정 대신 택한 도전… 다시 꿈을 지휘하다 [마이 라이프]

자유로운 영혼 가진 지휘자 이승원

운명의 독일 유학
‘노부스 콰르텟’ 멤버 만나… 2009년 합류
20대 청년들 의기 투합 ‘연주의 바다’ 빠져
2014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 ‘기염’
2017년까지 비올라 연주·지휘 공부 병행

악기 놓고 지휘 전념
연주 공연 늘자 병행 한계 느껴 지휘 선택
2018년 루마니아·2019 대만 콩쿠르 우승
2022년 라이프치히 음대 종신교수 사임
美 신시내티심포니 부지휘자 제안 수락

감춰진 실패와 노력
초대도 못 받은 콩쿠르 많아도 포기 안 해
200∼300쪽 달하는 교향곡 악보 암보 지휘
“철저한 악보 공부, 인생의 70% 이상 차지”
오페라 위해 이탈리아어·프랑스어 공부도

세계적 명성 획득
2024년 韓 첫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세계 24개 오케스트라 지휘 특전도 주어져
“지휘하고 싶은 어떤 오케스트라 있다면
자유롭게 지휘할 수 있는 것이 욕심이죠”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멤버로 세계 무대를 누비던 20대 중반. 그대로 쭉 가면 탄탄대로였다. 유명 무대에 설 기회도, 음악적 명성도 보장됐다. 하지만 이승원(36)은 사중주단을 홀연히 나왔다.

지휘자 이승원은 “현악사중주단 활동을 한 것이 지휘자로서는 정말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베토벤이 생애 마지막에 쓴 현악사중주 5개를 모르면 베토벤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는데, 저는 이 곡들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연주를 통해 작곡가의 내면을 직접 체험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5년 후에는 독일 대학의 종신교수직도 내려놨다.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그는 첫 한국인 종신교수였다. 직장인에게 ‘종신’만큼 안락한 단어가 있을까 싶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대신 택한 직업은 지휘자. 2∼3년 단위로 계약하고 늘 옮겨 다니며,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직종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한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승원이 유명 비올리스트에서 신예 지휘자로 다시 출발선에 섰던 그간의 행보를 되짚어 보면 남다른 결단력이 눈에 띈다. 안주는 달콤하고 도전은 고달픈데, 이 젊은 음악인은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지휘를 택했을까. 자처해서 험로를 걸어온 이유를 들으려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이승원을 만났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되게 단순해요. 제가 더 좋아하는 걸 택해요. 위험을 감수해야 하든 아니든. 나이가 서른을 넘어서도, 결혼한 후에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가족(아내)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줬고요.”

 

어린 시절 그에게는 유독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갈림길이 많았다. 이승원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IQ(지능지수) 162’의 천재 지휘자다. 중학교 때 나온 수치라고 한다. 외가가 음악 집안이라 4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비올리스트 이모 덕분에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 비올라를 전공으로 택했다.

공부도 잘 했다. 수학 영재원을 다니고 올림피아드에 출전하곤 했다. 예원학교에서 3년간 음악을 전공한 후에도 부모님은 ‘지금이라도 과학고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이승원 지휘자/2026.06.04./이재문 기자

이승원은 “예중·예고를 가면 그 길로 완전히 가는 거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고민해 봤다”며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와 별개로 음악을 좋아하기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KMC라는 전국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갔는데 3시간 동안 여섯 문제가 주어졌어요. 한 문제당 백지 두 장에 풀이 과정을 써야 했어요. 제가 수학 쪽으로도 재능은 있던 것 같은데 음악만큼 재밌어하며 즐기진 않았어요. 그래서 선택이 확고했던 것 같아요.”

그는 서울예고 1학년 때 독일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로 유학갔다. 독일에서 우연히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을 만났고 2009년 악단에 합류했다.

 

내년 20주년을 맞는 노부스는 한국 현악4중주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노부스 결성 당시 한국은 실내악단의 불모지였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남성 콰르텟’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콩쿠르를 디딤돌 삼아 유럽이라는 높은 벽을 깼다. 2014년 한국 현악사중주단으로는 최초로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당시 20대 청년 네 명은 서로를 ‘노부스라는 배를 같이 탄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동고동락했다. 이승원은 “매일 6∼8시간씩 멤버들과 부대끼고, 악기에 트렁크를 이고 지고 연주 여행을 다니며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이승원 지휘자/2026.06.04./이재문 기자

노부스가 고속성장하던 시기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결심을 한다. 2013년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비올라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치자 같은 학교에서 다시 지휘를 공부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지휘자의 꿈에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공연 영상들을 보면 (지휘자가) 직접 소리를 내는 게 아닌데, 소리를 직접 내는 사람들이 지휘자를 보면서 따르는 게 신기했어요. 같은 베를린 필하모닉이더라도 지휘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더라고요. 템포도 다르고 소리가 무거웠다 가벼웠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그는 2017년 말까지 노부스 연주와 지휘 공부를 병행했다. 노부스 공연이 한 해 60번쯤으로 늘어날 즈음, 임계점이 다가왔다.

“당시 베를린 예술고교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는 일정이 노부스의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과 겹쳤어요. 당연히 위그모어홀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예고 지휘를 취소하려니 너무 아쉬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그때 마음먹게 됐습니다. 병행할 수 없구나. 내 마음이 지휘 쪽이구나.”

 

앞날은 불확실했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가장 아쉬운 한 가지는 ‘현악사중주다운 연주를 다시는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예감이었다. 그는 “현악사중주는 대부분 작곡가가 말년에 가장 내면적·개인적 메시지를 담은 심오한 곡인 데다 기능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아 모든 클래식 장르 중 가장 어렵다”며 “뼈와 살을 깎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현악사중주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원 지휘자/2026.06.04./이재문 기자

지휘자로 전향한 그는 2018년 루마니아 BMI 국제 지휘 콩쿠르, 2019년 대만 타이베이 지휘 콩쿠르 우승 소식을 알렸다.

지휘자로 막 이륙하던 즈음,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닥쳤다. 2022년 이승원은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종신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신혼생활도 독일에서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제안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주저 없이 미국행을 택했다. 아내 역시 ‘대지휘자가 되고 싶으면 부지휘자는 당연히 거쳐야 한다’며 그를 지지했다.

지휘자로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킬 기회는 2024년 거머쥐었다. 세계 3대 지휘 콩쿠르 중 하나인 말코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였다. 무엇보다 전 세계 오케스트라 24개를 지휘하는 기회가 특전으로 주어진 것이 값졌다. 현재 그는 독일·스웨덴·오스트리아·미국·영국·노르웨이 등 주요 교향악단과 공연 일정이 꽉 차 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은 재능과 환경이 뒷받침된 젊은 천재의 성공기로 보인다. 이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말코 콩쿠르 우승 전에는 지원했는데 초대도 못 받아본 콩쿠르가 많아요. 말 그대로 오디션에서 떨어진 거죠. 그것들은 기록에 남지 않잖아요. 성공한 것들을 쭉 나열하니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겪고 좌절을 해봤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낙심도 해보고. 그래도 자신 있는 것 하나는 ‘다른 길을 갔어야 하나’ 하는 의심은 한번도 해본 적 없다는 거예요. 태어나서 한번도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라고 느낀 적이 없어요.”

이승원 지휘자/2026.06.04./이재문 기자

정체기인가 싶은 시기는 있었다. 2020∼2021년쯤 도전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당연히 좌절했다. 그는 “그런데 그때마다 ‘빨리 털고 더 성장해서 다음 걸 잘해야지’ 하며 달려왔다”고 했다.

공연장에서 마주하는 지휘자는 카리스마의 화신이자 무대 위 주연 같지만, 평소 삶은 구도자에 가깝다. 오케스트라와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순간은 업무의 10%도 안 된다. 나머지 90%는 홀로 악보와 싸우는 시간이다. 그는 200∼300쪽에 달하는 교향곡 악보를 암보해서 지휘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스코어(악보) 공부가 제 인생의 70% 이상이에요. 두 딸이 잠들면 새벽 3∼4시까지 공부할 때도 있어요. 기차·비행기 안에서는 당연하고 급하면 택시 안에서도 악보를 봐요. 지휘는 아주 정직하게, 절대적으로 막대한 시간이 필요해요. 머리의 좋고 나쁨, 경험의 많고 적음과 상관 없이. 몇십년간 지휘했고 잘 아는 곡이어도 다시 악보를 펴면 새로운 게 보이고 매번 다른 악단과 만나니까요.”

지휘자로서 막중한 책임감도 그가 악보 하나를 수십번씩 보며 파고들게 만든다. 그는 “리허설 현장에서 지휘자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결단력이 필요하다”며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해보면 단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 부분에서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고 질문하는데 그때 망설임이 없이 1초 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승원은 악보 분석 외에 이탈리아어·프랑스어까지 따로 공부한다. 오페라 지휘를 위해서다. 여기에 육아가 더해지니 24시간이 모자란다. 평균 4∼5시간쯤 자면서 분초 단위로 하루를 쪼개 쓴다. 이런 성실함과 예술적 정진에 비례해 자동으로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이승원은 “지휘자는 종신이란 개념이 없어 상임이 돼도 3년 계약 후 떠나니 평생 직장을 찾아 옮겨다녀야 한다”며 “평생 직업적 안정감을 느낄 수 없을 거란 리스크를 알고도 시작한 거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승원 지휘자/2026.06.04./이재문 기자

직장과 수입, 지낼 곳이 수시로 바뀌는 데 대한 현실적 고민은 있지만 그는 이조차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만큼 지휘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이 크다. 그는 ‘무대에서 귀가 느끼는, 도파민 분출의 순간’을 묘사했다.

“트럼펫이 클라이맥스에 올라왔을 때 제가 딱 사인을 주면 연주자가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모든 에너지를 실어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공연장 3층 천장에 반사돼 공간에 울려퍼지면서 제 뒤에서 때려요. 이런 서라운딩 체험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죠. 또 제 제스처에 따라 소리가 변할 때 느껴지는 성취감과 쾌감이 굉장해요. 똑같은 부분을 지휘해도, 손등이 보이게 혹은 손바닥이 보이게 저을 때 소리가 다 달라요.”

그는 좋은 음악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이승원이 되고 싶은 ‘좋은 사람’은 “뭐든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게 정말 좋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다. 현실적 목표도 명확하다.

“지휘하고 싶은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구애 없이 자유롭게 지휘할 수 있는 것. 그게 제 욕심이에요. 베를린필이든 빈필하모닉이든 로열 콘세르트 허바우든요. 꿈을 200%로 잡아야 100%라도 되잖아요. 전 세계 어떤 오케스트라든 지휘하고 싶어요. 커리어적으로 0부터 100까지 있다면 전 이제 50정도 온 것 같아요. 5년·10년 뒤 이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싶다는 목표를 다 갖고 있습니다.”

이승원은 25년 전부터 팬이라는 만화 ‘원피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루피라는 인물이 ‘해적왕이 될 거야’라고 하는데 이후 강자가 끊임없이 나온다”고 운을 뗐다.

“루피는 ‘가장 강한 사람이 해적왕’이라 말하지 않고 ‘이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해적왕’이라고 여겨요. ‘자유롭게 지휘하고 싶다’는 제 목표도 이와 비슷해요. (프랑스 작곡가인) 드뷔시의 ‘라벨’을 라디오 프랑스필하모닉과, (러시아인)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를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베토벤과 브람스를 베를린필과 공연해보고 싶다, 이런 꿈인 거죠. 그 곡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하는 것. 지휘자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지휘자 이승원은…

 

●1990년 3월 서울 출생 ●2009~2017년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멤버 ●2013년 독일 한스아이슬러음대 대학원 비올라 최고연주자 과정 ●2014년 노부스 콰르텟, 국제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 ●2018년 루마니아 BMI 국제지휘콩쿠르 우승 ●2019년 한스아이슬러음대 대학원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2019년 독일 함부르크음대 대학원 오케스트라 지휘 최고연주자 과정 ●2019년 대만 타이베이 지휘 콩쿠르 우승 ●2018~2022년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교수 ●2022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수석지휘자 ●2024년 말코국제지휘콩쿠르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