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폭행… 악마가 된 헤어진 연인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불법촬영 가해자 42% ‘전 애인’
피해비율 3년 새 3배 이상 증가
성추행도 ‘5.6%→14.6%’ 늘어
강간 가해자 상당수 ‘강요·속임’
폭행·협박 적용한 법 개선 필요
“여지 줬다” 등 2차 피해도 심각

지난해 경북 구미의 한 모텔에서 전 여자친구를 협박해 성폭행·불법촬영하고 살해한 장재원(27)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천에서는 전 애인 불법 촬영물을 지인 단체 채팅방에 유포한 남성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처럼 전 애인에 의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성평등가족부가 만 19세 이상 64세 이하 성인 남녀 1만1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3일 발표한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실태조사는 3년마다 실시한다.

 

◆전 애인에 의한 피해 3년 만에 3배로

 

특히 전 애인에 의한 피해가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 애인에 의한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피해 비율은 지난해 42.5%로 2022년(13.8%) 대비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 애인에 의한 성추행 피해 비율도 5.6%에서 14.6%로 늘었다.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유포 피해의 인지 경로는 ‘주변 지인을 통해(34.1%)’와 ‘유포자의 협박을 계기로’(32.3%)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유포자 협박 응답이 없고 ‘주변 지인을 통해(75.1%)’가 대다수였다. 전 애인이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을 가지고 직접 협박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추가 유포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여성 응답자 비중도 85.1%로 2022년(77.9%) 대비 증가했다.

 

관련 피해를 입은 경우 중앙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상담·영상물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 센터를 통해 수사기관과 연계, 법률 상담도 가능하다. 그러나 디지털성범죄 지원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해바라기센터와 같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 인지도는 70% 내외였지만 불법촬영물·신상정보 삭제 지원에 대해서는 57.2%, 삭제 지원 요청권은 48.2%만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경북 구미의 한 모텔에서 전 여자친구를 협박해 성폭행·불법촬영하고 살해한 장재원(27)이 경찰에 체포돼 2025년 8월 5일 대전서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간 당시 강요·속임 비중도 높아

 

강간(미수 포함) 피해 당시 가해자의 강요(84.4%)와 속임(47.7%)에 의해 이뤄졌다는 비율(복수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는 폭행·협박에 따른 경우만을 강간으로 보는 법 해석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성철 성평등부 안전인권정책관은 “강요 등에 의한 피해가 현행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동의 강간죄 입법에 대해서는 관계 부처와 논의하고 있는 만큼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통념에 기반을 둔 2차 피해 역시 여전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피해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말해봐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16.0%)’, ‘네가 그런 행동을 할 여지를 주었다(12.6%)’ 등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김 정책관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표준지침을 중앙 부처·교육청에 보급 중”이라며 “보완을 위해 영상·웹포스터 등을 활용해 캠페인·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뉴시스

성폭력 피해 신고율은 전반적으로 매우 낮았다. 성폭력 피해 이후 경찰 신고율은 1.8%(여성 2.4%, 남성 0.7%)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여성과 남성 모두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를 꼽았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증가와 2차 피해에 대한 국민 우려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