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없이 징집돼 청춘 박탈”…6∙25 생존 소년병∙유족, 첫 국가배상 소송 [지역이슈]

6∙25전쟁 당시 병역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 신분이었지만 군번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던 생존 소년병(少年兵)들과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번 소송은 2024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제기된 첫 국가배상 청구 소송이다.

 

23일 지역 법조계와 소송대리인 측에 따르면 6∙25전쟁 참전 소년병 장성곤(93)∙박태승(93)씨와 고(故) 장병율∙하명윤 씨의 유족은 이날 대구지법에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각각 1억원을 청구하는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왼쪽부터 소년병 박태승, 고(故) 장병율, 장성곤씨와 소송대리인 하경환 변호사. 하경환 변호사 제공

이들은 소장을 통해 “6∙25전쟁 당시 만 15~17세로 병역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였으나, 법적 근거 없이 정규군으로 강제 징집돼 전선에 투입됐다”며 “이 때문에 학업이 중단되고 영문도 모른 채 청춘을 빼앗기는 등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1950년 당시 병역법상 만 17세 이하 아동은 징집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낙동강 방어선 구축 등 전황이 급박해지자 대구∙경북 등 영남권 일대에서 법적 근거 없는 미성년자 징집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쟁 중 복교령에 따라 학교로 돌아간 ‘학도의용군’과 달리, 정규군 군번을 부여받아 다부동∙안강 전투 등 사선을 넘나들었고 정전 이후인 1954~1955년 사이 정식 제대했다.

 

그동안 생존 소년병들은 국가 차원의 공식 인정과 보상을 받기 위해 수십 년간 활동해 왔다. 16대 국회부터 ‘6∙25참전 소년병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매번 발의됐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자동 폐기만 반복됐다. 그러다 2024년 7월 진실화해위가 “소년병들이 법령상 근거 없이 동원돼 생명권 침해, 학습권 박탈 등 극심한 사회적 피해를 본 사실이 확인되므로 국가가 실질적인 피해 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해결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정부의 후속 조치는 전무했다.

 

결국 소멸시효 만료를 앞두고 소년병들이 직접 법정 투쟁을 택하게 된 배경이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하경환 변호사는 “청구한 위자료 1억 원은 잃어버린 삶에 대한 상징적인 금액일 뿐”이라며 “100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과거의 위법한 강제 징집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방부 등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참전한 소년병은 전국 2만9616명이며, 이 중 2573명이 전장에서 산화했다. 현재 생존 소년병들은 대부분 고령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전국에 1000명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