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카타르 예치 이란 동결자금은 한국이 2023년 9월 반환한 약 65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조7000억원) 규모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금 이전 과정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스위스 외에도 독일을 거치는 절차가 동원됐으며 카타르가 자금 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환차손을 떠안을 수 있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국내 IBK기업은행·우리은행에 원화로 동결돼 있던 이란의 원유 판매 자금 약 70억달러 가운데 약 65억달러가 스위스중앙은행, 독일연방은행(Bundesbank)을 거쳐 카타르로 이전됐다. 일반적으로 ‘약 60억달러’가 반환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제 이전 규모는 이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약 5억달러는 한국 기업이 이란에서 받아야 할 대금 등을 고려해 이란의 동의하에 한국에 남겨졌다.
최종적으로는 케샤바르지, 사만, 파사가드, 투어리즘, 샤르, 카라파린 등 6개 은행이 카타르 내 알아흘리 은행과 두칸 은행에 개설한 계좌로 들어갔다.
자금 이전의 최대 변수는 환율 변동 위험이었다. 한국, 스위스, 독일, 카타르의 은행으로 이어지는 이전 과정에서 원화를 외화로 전환하는 상당한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카타르가 최대 1억 달러 규모의 환차손을 부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자금 이전이 가능했다. 다만 우려했던 환차손은 실제 발생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이란은 당초 오만이나 아랍에미리트(UAE) 계좌로 자금을 이체받길 희망했지만, 미국과 협의 끝에 카타르로 결정됐다”며 “이 과정에서 카타르가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최종 합의에 이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린 상황에서 동결자금을 반환한 것 자체가 한국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체제를 준수하면서도 이란의 반발과 양국 관계 악화를 최소화한 채 자금 이전을 성사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부는 자금 이전과 관련된 미국, 이란, 카타르, 스위스, 독일은 물론, 국제 금융기관과의 협의를 동시에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 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시장 충격과 환율 문제까지 관리해야 했던 만큼 고도의 외교·금융 협상이 병행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당시 이란 동결자금 반환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준수하는 동시에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막아야 했던 고난도 협상이었다”며 “결과적으로 한·이란 관계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였던 동결자금 문제를 매듭짓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자금은 2023년 9월 카타르로 이전된 지 한 달여 만에 가자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동결 상태에 놓였다. 이후 미국이 이란의 자금 접근을 제한하면서 실제 사용은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 스위스에서 진행된 미·이란 협상에서는 카타르에 예치된 한국발 자금의 사용 범위와 접근권 확대 문제가 다시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카타르에 예치된 자금의 사용처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미국산 농산물 구매 등에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은 이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최근 양국은 카타르에 예치된 한국발 자금 외에 전 세계에 동결된 약 1000억달러 규모의 이란 자산에 대한 접근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은 60일 동안 이란 원유 관련 제재를 해제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재무부는 이란산 원유의 생산, 인도, 판매를 허용하는 60일짜리의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했다”고 밝혔다. 스위스 실무회담에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재입국 수용을 약속한 것에 대한 상응조치다. 재무부의 제재 면제는 미 동부시간 기준 8월 21일 0시 1분까지로, 이란은 이 시점까지 원유 제품을 판매하고 대금을 달러화로 받을 수 있다. 다만 미국은 북한과 쿠바, 크림반도를 포함해 러시아가 점령·병합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개인과 기관과의 거래는 여전히 금지했다. 뉴욕포스트는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이란이 시장가격으로 공개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