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총회장 영장 심사와 법치주의의 품격 [종교칼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법을 어긴 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받고 법의 판단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법 위에 설 수는 없다. 법치국가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을 지나치게 쉽게 구속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속은 형벌이 아니다. 수사 편의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형사사법 체계에서 구속은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허용되는 예외적 강제처분이다. 그래서 법원은 늘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따진다. 혐의의 중대성만으로 구속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이번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만희 총회장의 나이다. 1931년생인 그는 올해 95세다. 신천지 측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그가 수사에 성실히 응해 왔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분명한 것은 95세라는 나이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노인의 건강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내일 갑자기 위중해질 수도 있다. 특히 초고령자의 경우 환경 변화 자체가 심각한 건강 악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료진이 현재 건강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미래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법률문제를 넘어 인도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슷한 우려는 가정연합 한학자 총재 사례를 지켜보면서도 느꼈다. 고령의 종교지도자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그 자체로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상당하다. 한 총재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지병이 악화되거나 낙상 사고를 겪는 등 건강상의 우려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따라서 고령자의 경우 법률적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 사회 분위기다. 특정 종교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면 어느 순간 법률적 판단보다 감정적 판단이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종교에 대한 호오(好惡)가 구속 여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소수종교라고 해서 법적 기준이 달라져서는 안 되며, 반대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종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아서도 안 된다. 법치는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작동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도는 권력을 얼마나 행사하느냐보다 얼마나 절제하느냐에서 드러난다. 국가가 수사하고 구속할 권한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법치주의는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라는 원리가 아니다. 특히 구속은 개인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예외적 강제처분인 만큼 여론이 아니라 법적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법치국가의 품격은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권력을 스스로 절제하는 데서 나타난다.

 

종교의 자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교분리의 핵심은 종교가 법 적용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종교를 특별히 적대하거나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종교단체의 위법 행위는 법으로 다루되, 종교 자체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거나 지도자를 상징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만희 총회장이 무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학자 총재가 무죄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다만 법적 판단 이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강제력을 행사할 때는 언제나 절제가 필요하다는 원칙이다. 특히 90세를 훌쩍 넘긴 초고령 종교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구속이 정말 불가피한지, 다른 수단은 없는지, 인간의 존엄과 건강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끝까지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특정 종교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와 법치주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문제는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얼마나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법은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엄정함과 인도주의는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서 집행되는 법만이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있다. 초고령 종교지도자에 대한 영장 청구를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유무죄 자체보다 사법당국과 국가 권력이 보여줄 법치주의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