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출범을 일주일여 앞둔 경기도정이 이른바 ‘재정 파탄’ 논란으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인수기구인 ‘공정·혁신·포용 경기준비위원회’(경기준비위)가 도의 누적 채무를 7조원으로 진단한 뒤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은 도청 예산 관련 부서를 질타하며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편성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조사를 예고했다.
인구 1420만으로 광역자치단체 중 최대 규모인 경기도는 재정자립도 52.77%(2024년 기준)로, 서울·세종에 이어 수위권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부동산 세수 급감으로 인한 최근 재정난과 ‘확장재정’을 둘러싼 파장은 당분간 여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秋 당선인, ‘예정된 파탄’에 ‘칼바람’ 예고
23일 경기준비위에 따르면 추 당선인은 전날 오후 도 예산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재정 상황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재보고를 명령했다. “예정된 재정 파탄을 미리 막지 못했다”며 “보고 내용도 부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김영진 경기준비위 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곳간을 열어봤더니 빚 문서만 가득하다”고 토로한 데 이어 당선인 역시 도청 예산 관계자들을 강하게 몰아붙인 것이다.
경기준비위 분석에 따르면 도의 누적 채무는 7조원을 넘어섰으며, 올해 재정 소요액 중 3132억원은 예산안에 아직 반영조차 되지 못했다. 비상금 성격이 강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의 가용 재원마저 1300억원 수준으로 바닥을 드러내면서 최대 규모 ‘감액 추경’을 검토할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도 예산 부서는 전체 지방세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부동산 취득세가 2022년 11조원에서 올해 8조1000억원으로 2조9000억원이나 급감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추 당선인은 이를 전형적 ‘남 탓’으로 규정하며 단호하게 쳐냈다. 그는 “재정 악화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대외 상황만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며 20년 만에 지방채까지 발행했던 확장재정 기조를 정조준했다.
이는 예견된 세입 감소 속에서 브레이크 없이 긴축 대신 지출을 늘린 전임 도정의 정책을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재난기본소득·지역화폐·복지·R&D 예산 등 투입
도청 일각에선 “방만 재정이 아니라 경제 위기 국면에 중소기업·민생정책에 상당수 예산이 투입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도의 기금 차입과 지출 확대 이면에는 대내외 위기가 자리한다. 확장재정 기조가 강한 민주당 정부와의 동조화 현상도 엿볼 수 있다.
앞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이재명 지사는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자체 지역개발기금·재난관리기금 등에서 상당액을 차입했고, 이를 도가 2029년까지 매년 상환해야 하는 구조를 띠었다.
2024년 윤석열 정부 들어 ‘건전재정’을 표방하며 지역화폐 국비 지원을 전액 삭감했을 때는 김동연 현 지사가 도비 954억원을 추가 투입해 골목상권의 숨통을 틔웠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일괄 감축됐을 때도 도내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자체 예산을 확대했다.
결국 2022년 대비 올해 본예산이 19.2% 늘어나는 동안 복지 분야 예산은 39.5% 급증했다. 정부 사업에 수반되는 국·도비 매칭 비용 역시 50.8%나 급증했다. 특히 소비쿠폰 등 정부 정책에 따라 도가 의무적으로 분담해야 할 매칭 예산이 비대해진 것이 재정 압박에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쯤 되면 안정적 세입 기반 없이 기금과 채무에 의존하는 방식이 누적되며 가용 재원이 고갈됐다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이에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탓해야 한다”며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국힘 “李 대통령 탓해야”…확장재정 공격
추 당선인이 정부에 건의했다는 보통교부세 ‘교부단체’ 전환 요청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에 교부세를 나눠주고 서울시, 경기도와 같은 불교부단체에는 교부세를 주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는 재정 수요와 세수를 계산해 법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다. 어렵게 요청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기존 배분액이 줄어들 다른 시·도의 강한 반발이 예상돼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결국 민선 9기 추미애호는 출범과 동시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준비위가 이미 가용재원 3조5000억원 중 1조원이 빚으로 조달된 만큼, 뼈를 깎는 인적·물적 재정 효율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른바 ‘곳간 개혁’에 이목이 쏠린다.
추 당선인과 준비위는 연일 경기도의 심각한 재정 위기를 거론하며 타개책 마련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조직 신설이 유보되고 기존 사업 재편과 우선순위 배정, 공약사업의 순차 진행 등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임기 초기부터 난제(難題)를 떠안게 된 추 당선인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