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명시했다. 특정 지역만이 아닌 전국의 선거 관리를 총괄하는 곳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헌법 114조 2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그리고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까지 총 9인으로 중앙선관위가 구성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互選)한다. 다만 1963년 선관위 창설 이래 60년 넘게 대법원장 몫 선관위원인 현직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뽑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선관위의 가장 큰 문제는 기관장인 위원장이 상근(常勤)을 안 하는 ‘파트타임’ 직책이란 점이다. 대법관으로서 사건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주로 대법원에 머물며 정작 선관위에는 잘 가지 않는다. 대법관 시절인 1988∼1989년 선관위원장을 겸임한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훗날 회고록에서 “대법관 업무 외로 겸직하는 자리인데도 대법관의 사건 배당에 이를 전혀 참작하지 아니해 업무 부담이 컸다”고 술회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회사는 경기 과천(선관위)에 있는데 정작 그 사장은 서울 서초동(대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모순점은 여전하다.
선관위원장이 선관위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기 어려운 구조를 감안해 정부와 국회는 선관위 상임위원(장관급)을 도입했다. 9명의 선관위원 중 1명을 상근직으로 지정해 선거가 없는 시기에도 선관위 청사에 상주하며 그 직원들을 감독하도록 한 것이다. 선관위에는 위원 말고 일반 직원들을 통솔하는 사무처 기구가 있다. 감사원이 감사원장을 비롯해 감사위원 7인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와 감사원 사무총장(차관급)을 정점으로 하는 사무처 조직으로 이원화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선관위 사무총장이 상임위원과 똑같이 장관급 예우를 받다 보니 둘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게 되었다. 선관위 상임위원이 사무총장을 제대로 지휘하려면 사무총장 직급을 차관급으로 낮추는 등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6·3 지방선거 당일 벌어진 투표 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3일 선관위원 전원을 증인으로 부른 것도 그 심각성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 이미 사퇴한 노태악 전 위원장과 위철환 상임위원을 제외한 7명의 선관위원은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비(非)상임위원인 만큼 책임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다. 여야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지자 뒤늦게 5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헌법은 선관위원에게 6년 임기를 부여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刑)의 선고에 의해서만 파면이 가능할 만큼 신분 보장도 철저하다. 이는 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공히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관위가 논란에 휘말리자 비상임위원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권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