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유치하고 황당한데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지난 16일 시청률 7.6%로 종영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 드라마는 미역국의 맛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 박지훈이 온몸에 미역을 감고 명화 ‘천지창조’를 패러디한 장면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완벽하고 고상한 ‘A급’ 서사의 문법을 벗어난 예상 밖의 ‘유치함’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드라마와 영화계를 넘어 딱딱한 공공기관의 홍보 방식까지 바꿔 놓은 ‘B급 감성’의 배경을 살펴봤다.
◆ ‘B급 감성’ 유래와 배경
‘B급’이라는 말의 유래는 뜻밖에도 100년 전 미국 할리우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간행물 ‘2020년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따르면 B급은 1920년대 할리우드에서 인력 양성을 위해 제작한 저예산 영화에서 유래했다. A급이 하지 못하는 독창적인 실험과 특유의 정서는 소수 마니아층을 사로잡는 B급만의 무기가 됐다. 오늘날에는 의미가 확장돼 B급 감성은 주류의 고상하고 세련된 감성과는 다른 다소 유치하더라도 솔직하고 가벼우며 본능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정서를 뜻한다.
김경희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는 세계일보에 “서사의 문법을 깨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행위가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파격적인 B급 코믹 연기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드라마 제목과 비속어를 결합한 ‘취랄’이라는 신조어까지 퍼뜨렸다.
◆ 영화·드라마·OTT에도 보이는 B급 감성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처럼 B급 감성을 적극 활용하는 대표적인 연출자로는 이병헌 감독이 꼽힌다. 이 감독은 특유의 문어체적 대사와 이른바 ‘말맛’을 살린 표현으로 B급 감성을 극대화하며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감독의 대표작인 영화 ‘극한직업’(2019)은 누적 관객 수 1626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관객 수 3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국내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한 경찰서 마약반 5인방이 범죄조직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을 했다가 뜻밖에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시작부터 범인 한 명을 잡기 위해 건물 창문 밖에까지 매달리며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도주하던 범인이 지나가던 마을버스에 부딪혀 검거되는 등 예상치 못한 장치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 감독의 B급 감성 연출은 안방극장과 OTT 플랫폼으로도 이어졌다. 종영 이후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간접광고(PPL)인 안마의자를 극 중에 대놓고 녹여내는 역발상 연출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2024)은 주인공의 딸이 의문의 사고로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B급 정서’의 정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 B급 감성으로 달라진 공공기관 홍보 풍경
B급 감성은 공공기관의 홍보 패러다임도 바꿨다. 대표적인 사례가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주시’다. 김선태 전 홍보팀장이 이끌었던 유튜브 채널 ‘충주시’는 한때 구독자 수 97만5000명에 달하며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유튜브 채널 ‘충주시’의 성공 요인은 기존 공익 홍보의 틀을 깨고 내세운 B급 감성에 있다. 저퀄리티 감성을 의도적으로 살린 엉뚱한 연출은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2020년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관짝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활용해 ‘코로나19 생활 속 거리두기’를 홍보한 영상은 조회수 1140만 회를 기록했다. ‘충주시’의 행보는 타 지역 주민들까지 충주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에 양주시, 양산시 등 전국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B급 감성을 접목한 파격적인 홍보전에 뛰어들고 있다.
이 같은 공공기관의 B급 감성 홍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권위적이었던 지자체의 문턱을 낮추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시민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유튜브 채널 ‘충주시’처럼 딱딱한 이미지를 가진 기관이 ‘B급 문법’을 차용하면 ‘의외성’ 자체가 화제가 된다”며 “권위 있는 존재가 스스로 낮추는 모습은 친근감과 신뢰를 동시에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SNS 문화가 정착하면서 ‘같이 웃고 공유하는’ 경험 자체가 B급 콘텐츠 소비의 목적이 됐다”며 “밈화 가능성이 큰 B급 정서는 대중 사이에 자연스럽게 확산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