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분 전'·'낙동강 오리알'…6·25전쟁에서 유래됐다고?

6·25 76주년…'원산폭격'·'귀신 잡는 해병' 등 여전히 일상에

6·25 전쟁 후 76년이 지났지만, 전쟁이 빚어낸 용어는 여전히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녹아있다.

가령, 주로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일컫는 '개판 오분 전'이라는 말이 6·25 전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도중 어느 농가에서 쉬는 아이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들을 위해 지은 밥솥의 뚜껑을 열기 직전의 상황을 비유한 말이라는 설이다.



배식을 담당하는 이가 밥이 지어졌으니 먹을 준비를 하라며 "개판(開飯) 5분 전!", 다시 말해 "배식 5분 전!"이라고 외치면, 굶주린 사람들이 배급을 위해 몰려들어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이다.

전쟁 당시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 용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 여당·야당이 서로를 비난하거나, 정치인이 소속 정당의 집안싸움을 비유하며 자조하는 표현으로 쓰이곤 한다.

이 때문에 '개판 오분 전'의 '개'(犬)를 동물을 뜻하는 단어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말이 씨름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개판'(改板)이 씨름 선수가 동시에 넘어져 판정 시비가 붙어 '경기를 다시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때 시비가 붙은 상황을 '개판 오번 전'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은 '개판 오분 전'의 유래와 관련해 따로 명확한 정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처량한 신세'를 뜻하는 '낙동강 오리알'도 한국전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50년 8월 국군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전투하던 북한군이 갑자기 떨어진 유엔군의 포탄에 쓰러져 낙동강에 떠내려가자, 국군이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고 외쳤다는 것이다.

이후 전투에서 패배해 낙오된 북한군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낙동강 오리알'의 유래 또한 명확하지는 않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이 관용구가 '오리가 낙동강 변에 낳은 알들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물에 빠져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 부화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유래를 밝히기도 했다.

이 표현은 수십 년이 흘러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온 실직자, 공천받지 못한 정치인 등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곤 했다.

뒷짐 진 채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원산폭격'도 6·25전쟁 당시 원산을 폭격하기 위해 급강하하는 폭격기의 모습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해병대의 대표적인 수식어인 '귀신 잡는 해병대'도 마찬가지다.

1950년 8월 감행된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을 소개하는 미국 종군기자의 "그들은 귀신이라도 잡을 것"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있다. 반면 해당 기사가 소실돼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전단지를 뜻하는 '빌'(bill)과 일본어 '비라'(びら)에서 유래한 대남ㆍ대북 선전용 전단인 '삐라'도 6·25전쟁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이 있다.

전쟁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이 심리전을 위해 전단을 만들어 뿌렸고, 휴전 이후에는 남과 북이 체제를 두고 전단 전쟁을 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낳은 음식들도 여전히 식탁을 자리 잡고 있다.

전후 식량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미군 부대를 통해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 베이컨 등에 김치와 고추장 등 우리 음식을 한 데 넣고 끓여 탄생했다는 '부대찌개'가 대표적이다.

부대찌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미군 부대가 많은 의정부에서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의정부에는 '부대찌개 거리'가 성업하고 있고,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2016년 의정부 부대찌개 축제에 참석해 "의정부는 한미 관계에서 상징적인 도시"라고 말한 바 있다.

부산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밀면도 전쟁 직후 구하기 어려워진 메밀 대신 미군의 원조로 얻은 밀가루에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섞어 면발을 뽑아내 탄생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