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 중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라파엘 그로시(65) 사무총장이 한국을 향해 사실상 ‘일본 수산물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그 인근에서 잡힌 수산물 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외교관인 그로시는 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할 제10대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했으며, 후보자 5명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로시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원전 방사능 오염수(일본 명칭 ‘처리수’) 방류 실태 등을 살펴보기 위해 전날 방일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당사국이 되길 희망한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을 CPTPP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이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를 철폐하길 바라며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우려해 후쿠시마는 물론 미야기(宮城), 이바라키(茨城) 등 일본 동부 8개현(県)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또 도쿄, 홋카이도 등 8개 지역 수산물에는 수입 시 방사성 물질 검사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로시는 일본 수산물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 “국가 정책과 결정은 각국의 책임으로 IAEA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사실상 ‘안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선 “IAEA 임무는 방류가 국제적인 원자력 안전 기준을 완벽하게 준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까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20번째 방류를 마쳤다. 이에 관해 그로시는 “엄격한 국제 관리 기준을 따른다는 점에서 진전 속도가 꽤 인상적”이라며 “방류 작업을 서두르기보다 정당한 방법으로 이뤄지길 원한다”고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51년까지 후쿠시마 원전을 원전히 폐기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을 추진하는 한국 입장에서 IAEA는 ‘갑(甲) 중의 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그로시를 지지하고 그 대가로 핵잠 건조 및 운영과 관련해 IAEA의 협조를 받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그로시는 2023년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개시에 앞서 한국의 현 집권 세력과 ‘악연’을 맺기도 했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에 나서기 직전 당시만 해도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했다. 그로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검증 결과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결론을 설명하기 위해 2023년 7월 방한했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전 국회의장)은 IAEA의 검증 결과를 겨냥해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검증”이라며 단식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제주 서귀포가 지역구인 위성곤 의원(현 제주지사 당선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그로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로시는 일본 등 강대국 편만 든다’는 국내 일각의 비판적 시각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전 본격화 이후 한국 정부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