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부 소방관 죽음 내몬 갑질… 사후엔 ‘남친 탓’ 문서 왜곡까지 모두 사실로

국무조정실, 광주 광산소방서 합동점검 결과 발표… ‘최악의 직장 괴롭힘’ 민낯 폭로
15개월간 24회 술자리 강요·사적 노역 동원… 사망 후 상담자료 유출해 ‘2차 가해’ 횡포
비위 공직자 17명 무더기 징계 처분 요구·퇴직자 등 수사의뢰… 소방노조 “엄중 처벌해야”

결혼을 앞두고 있던 20대 여성 소방관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의혹이 정부 합동조사 결과 모두 참혹한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소방당국은 고인이 숨진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개인 심리상담 자료를 무단 유출·왜곡해 사망 원인을 지극히 사적인 남녀 문제로 몰아가는 등 조직적인 ‘2차 가해’와 은폐를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져 거센 공분을 사고 있다.

 

사진=광주 광산소방서 제공

24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스로 생을 마친 광주 광산소방서 소속 A 소방교(당시 28·여)는 사망 전 15개월 동안 상급자들로부터 무려 24회에 걸쳐 강압적인 음주 회식을 강요받았다.

 

조사 결과 상사들은 주점과 나이트클럽 등에서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며 고인에게 “소방서장과 과장 사이에 앉아라”, “서장에게 술을 받아라”,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라” 등 공직 기강을 무너뜨리는 모욕적 요구를 일삼았다. 또 전임 서장 친인척 상가에서의 상차림 심부름, 주말 서장 퇴임식 행사 강제 동원, 상사 차량 대리운전, 해외여행 시 술·커피 상납 요구 등 사적인 노역에 고인을 수시로 노예처럼 동원했다.

 

상사들의 잔혹한 횡포는 고인의 죽음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광주소방본부는 A 소방교 사망 후 작성한 면직 인사 관련 공문서에 죽음의 배경을 마치 ‘남자친구(약혼자)와의 불화’ 때문인 것처럼 내용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생전 비밀 심리상담 자료를 권한 없이 무단 취득한 뒤 입맛에 맞는 대목만 교묘히 ‘편집’해 첨부했다. 이 왜곡된 문서들은 대국민 공개 상태로 15개 유관 부서에 고스란히 발송돼 대내외에 노출되는 씻을 수 없는 2차 가해를 낳았다.

 

조직적 방조와 은폐 정황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고인의 소속 관서인 광산소방서는 유가족의 눈물 어린 진상조사 요청을 전면 묵살한 채 ‘특이사항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특히 자체 조사 과정에서 갑질 행위자로 지목된 해당 부서장에게 실무 조사를 맡기는 황당한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상급 기관인 광주소방본부와 최후의 보루여야 할 소방청 본청 역시 익명 제보와 약혼자의 공식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수개월간 감찰을 방치하거나 대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으며 사실상 사건을 덮는 데 급급했다.

 

이창석 소방노조 전국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소방 조직 내부 깊숙이 뿌리내린 권위주의적 ‘상후하박’ 문화가 빚어낸 참혹한 구조적 살인”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 조직이 내부 구성원의 인권과 존엄은 무참히 짓밟았다. 낱낱이 밝혀진 진상을 토대로 가해자와 방조자 전원을 엄중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번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해 광산소방서 9명, 시소방본부 6명, 소방청 본청 2명 등 비위 공직자 총 17명에 대한 무더기 징계 처분을 소방청에 요구했다. 범죄 혐의가 짙은 퇴직 공직자 2명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이번 점검 과정에서 추가로 적발된 광산소방서 내 사행 행위 등 별도의 위법 사실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인 수사의뢰 조치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