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약 늦게 먹을수록 심혈관질환·사망 위험 커진다

진단 후 3개월 내 치료 땐 사망위험 최대 69%↓
연구팀 “초기 혈당 관리가 평생 혈관 건강 좌우”
당뇨병 진단 기준에 도달한 뒤 당뇨병약을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에 따라 향후 심혈관질환과 사망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당뇨병을 진단 받은 뒤 약물 치료를 미루면 심혈관 질환과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뇨병은 혈관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질환에 가깝기 때문에 빠른 약물 치료를 통한 조기 혈당 관리가 평생 혈관 건강을 좌우한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강북삼성병원·서울대병원·성균관대 약대 공동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를 통해 당뇨병 진단 기준에 도달한 뒤 당뇨병약을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에 따라 향후 심혈관 질환과 사망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당뇨병은 보통 혈당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학적으로는 혈관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전신 질환에 가깝다. 특히 당뇨병 진단 초기의 혈당 관리가 향후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뒤 심혈관질환과 사망 위험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기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연구팀은 2013∼2022년 국내 건강검진 자료와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연계해 평균 나이 48.2세 성인 2만3452명을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당화혈색소 6.5% 이상이거나 공복혈당 126㎎/dL 이상으로 새롭게 제2형 당뇨병 진단 기준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연구팀은 이들을 당뇨병약 복용 시점에 따라 △3개월 이내 △6개월 이내 △12개월 이내 △12개월 이상 등 치료 지연 그룹으로 나눠 향후 5년 간 주요 심혈관 사건과 전체 사망 위험을 비교했다. 여기서 주요 심혈관 사건은 심근경색, 뇌졸중, 전체 사망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 결과, 당뇨약을 3개월 이내 복용하기 시작한 그룹의 5년 내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은 약물치료를 1년 이상 미룬 그룹보다 상대적으로 68% 낮았다. 6개월 이내와 12개월 이내 치료 그룹의 위험 감소 효과는 각각 35%, 7%였다.

 

다만 그룹 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까지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전체적으로 치료 시점이 늦어질수록 보호 효과가 점차 약해지는 흐름은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 여겨볼 대목은 전체 사망 위험에서 조기 치료 효과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진단 후 3개월 이내 약물 치료를 시작한 그룹의 5년 내 전체 사망 위험은 치료를 늦춘 그룹보다 69% 낮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의 배경으로 이른바 ‘대사 기억’(metabolic memory) 또는 ‘레거시 효과’(legacy effect)를 제시했다.

 

이는 당뇨병 초기에 혈당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면 이후 혈당 상태가 다소 악화하더라도 혈관 손상 위험이 장기간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대로 초기 고혈당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 반응, 최종당화산물(AGEs) 축적 등이 누적되면서 혈관 손상이 사실상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당뇨병 진단 기준을 넘었음에도 절반가량은 5년 동안 약물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당뇨병 초기엔 특별한 증상이 거의 없어 환자 스스로 질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점이 치료 지연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뇨병은 증상이 없어도 혈관 손상을 가속한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심장과 뇌, 신장, 눈 같은 주요 장기의 손상 위험도 커진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는 심혈관 질환이어서 약물치료를 늦추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당뇨병 치료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단순 혈당 조절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당뇨병약과는 달리 최근에 주로 쓰이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와 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2(SGLT-2) 억제제 등은 심부전과 심근경색, 뇌졸중 위험 등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2018년 이후 진단된 환자에서 조기 치료의 심혈관 보호 효과가 더 크게 관찰됐다. 연구팀은 새로운 계열의 당뇨병약 도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제2형 당뇨병 진단 기준을 처음 충족한 환자에서 약물 치료를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가 장기적인 심혈관 건강과 생존율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보건당국과 의료진이 당뇨병 조기 진단과 신속한 치료 개시를 촉진할 수 있는 전략 마련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 논문은 최근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