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해리 해리스 전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북 대화가 한·미의 북한 위협 대응 능력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트럼프식 대북 관여가 재개되더라도 대화와 억지를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해리스 전 대사(전 미국 태평양사령관)는 24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하 제주포럼) 동아시아 안보질서 세션에서 이같이 말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 초점이 어디로 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식 대북 접근이 다시 변수로 떠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구체적 협상 재개 계획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유럽·G7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재차 확인해 줬다”고 19일 밝혔다.
다만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뿐만 아니라 한층 복잡해진 협상 환경에도 주목했다. 그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짚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비핵화 가능성에 회의론을 드러냈다. 해리스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이 우크라이나와 이란 사례에서 ‘핵무기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한 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고, 이란은 핵무기 보유국이 아닌 상태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을 받았다.
해리스 전 대사는 북한과 대화하더라도 북한 위협에 대응할 능력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과의 외교가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한·미의 대북 억지력과 군사적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해리스 전 대사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 1기 당시 그가 한·미 워킹그룹을 통한 대북정책 조율과 제재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던 기조와 맞닿아 있다. 그는 2020년 문재인정부가 북한 개별관광을 검토하자, 대북제재 위반 논란을 피하려면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이를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후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협력 속도를 제약한다는 비판과, 대북제재 공조를 위한 불가피한 조율 장치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이 때문에 트럼프식 대북 관여가 재개되더라도 협상 환경은 2018년보다 한층 복잡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리스 전 대사는 미국의 여러 행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며, 외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이 북한의 핵 능력이 현실화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미국 내 대북 압박론이 커질 경우,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의제와 조건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중동 상황 관련 질의응답에서 미국이 동맹국과 파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각국이 자국 이익에 따라 거절할 수 있지만, 미국도 이후 자국 이익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주목된다. 북한 문제를 직접 겨냥한 발언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여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국 등 동맹국의 안보 역할분담과 대미 조율 문제가 함께 떠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향후 북·미 대화가 다시 추진될 경우 한국 정부에 남북관계 복원 구상과 한·미 대북 공조 사이에서 다시 균형점을 찾아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