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도서관과 도서전 사이

정적·소란으로 대비되는 두 공간
책과 독자의 만남 속도도 달라
AI 시대 책이 살아남기 위해선
사람이 책 앞에 머물게 이끌어야

책을 만나는 공간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마다 작은도서관이 들어서고, 지역 공공도서관들도 현대적인 시설과 문화 프로그램을 갖추어 사랑방 역할까지 맡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2차선 도로만 건너면 작은도서관이 있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공간을 지척에 둔다는 것은 참 큰 행운이다. 이렇듯 이제 책은 먼 곳의 것이 아니라 생활권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해마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조용히 책을 읽을 공간은 충분한데, 사람들은 왜 다시 책의 축제를 찾아가는 것일까.

도서관과 도서전은 책을 만나는 방식이 다르다.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의 풍경은 그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올해 나는 그 풍경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도서전에 맞추어 새 시집을 펴냈고, 직접 사인회 자리에 앉아 독자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독자들이 건네는 “축하드립니다”라는 인사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반갑게 화답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한 사람의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거리가 도서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천수호 시인

도서관의 정적과 도서전의 소란은 언뜻 정반대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나는 침묵 속에서 책을 만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와 대화 속에서 책을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두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도서관도 도서전도 결국 책과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한 공간이다. 다만 그 만남의 속도와 형식이 다를 뿐이다.



도서관에서 책과 독자의 만남은 느리다. 아무도 빌리지 않는 책들이 서가에서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어떤 책들은 너무 오래 붙어 있어서 서로의 제목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 더딘 시간 속에서 책은 자신을 펼쳐줄 단 한 사람을 기다린다. 또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너무 닳은 문장들을 찾아 더듬기도 한다. 그 기다림과 더듬음이야말로 도서관이 책에게 허락하는 시간이다.

도서전에서 만남은 눈앞에서 이루어진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인간선언’을 주제로 내걸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답해주는 시대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인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사인회 자리에서 마주한 독자들의 표정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들의 표정에는 정답을 기다리는 조급함보다, 이 책이 무엇을 물어올지 궁금해하는 기색이 더 컸다.

책이 하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책은 답을 주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도서전이라는 무대 위에서 책은 더 이상 어딘가에 꽂혀 기다리지 않고, 직접 걸어 나와 독자와 눈을 맞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만남의 끝에 독자가 들고 돌아가는 책 한 권도 결국 도서관이나 자신의 책장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시작된 인연은 혼자 책장을 넘기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반대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책 한 권이 또 다른 책을 찾아 나서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책은 한자리에 머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래도록 이동한다. 도서관과 도서전도 서로 반대편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길이다. 하나는 책을 기다리게 하고, 다른 하나는 책을 움직이게 한다. 두 공간은 서로의 입구이자 출구다.

다만 이 두 공간이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검색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얻고, 인공지능이 줄거리도 몇 초 만에 요약해 주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단지 책을 보관하고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서관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야 하고, 도서전은 화려한 행사를 넘어 일상의 독서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사인회의 인연이 한 번의 추억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책장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책을 사는 기쁨이 책을 읽는 기쁨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두 공간에 남겨진 과제는 사람들이 책 앞에서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천수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