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자백/사울 카신/이윤정 옮김/진실의힘/2만9000원
2009년 어느 날, 미국 시카고 외곽의 한 어린이집에서 16개월 된 영아가 의식을 잃고 입에 거품을 문 채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튿날 법의병리학자가 부검을 통해 아이에게 머리뼈 골절이 있고 둔기 외상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리자, 곧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어린이집에서 근무 중이던 22세의 보조교사 멀리사 칼루신스키가 수사당국의 조사실로 호출됐다. 멀리사는 학교에서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평범한 여성. 그는 형사가 “당신이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아니요,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멀리사는 조사실 문이 닫히고 신문이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아이가 넘어지는 걸 봤다고 인정했고, 6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말했으며, 9시간 후에는 좌절감에 아이를 바닥에 던졌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14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형사들이 건넨 플라스틱 인형을 두 손으로 잡고 아이를 바닥에 내던지는 장면을 성실하게 재연했다.
도대체 14시간 동안 조사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사 결과, 형사들은 좁은 조사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끊임없이 유죄를 추궁했다. 멀리사는 울면서 70번이 넘게 아이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수사관들은 “과학적으로 확실하다”며 그의 현실감각을 뒤흔들었고, 마지막엔 “사고는 매일 일어난다” 같은 죄책을 덜어주는 말로 그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멀리사는 31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중에 숨진 아이의 머리뼈 골절은 사망 직전에 생긴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게 드러나면서 살인이 아닌 ‘미확인’으로 사인이 바뀌었고 검시관들은 그의 석방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2심 재판부는 그가 이미 자백했다는 이유로 판결을 번복하지 않았지만.
형사사법 심리학 대가인 저자는 신간에서 수많은 수사기록과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 신문기법’이라는 명분 아래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무고한 피의자를 범인으로 만들어나가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나아가 ‘인간은 왜 짓지도 않는 죄를 자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은 왜 그 자백을 그토록 쉽게 믿는가’라며 물증을 압도하는 자백의 강력한 오염 효과도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