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사람들/나오미 배런/전병근 옮김/웅진지식하우스/2만2000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국제도서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이른바 ‘텍스트 힙’(Text Hip·책을 읽고 글을 쓰며 문학과 지식을 소비하는 행위를 세련된 문화적 취향으로 여기는 현상) 열풍에 힘입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책 읽기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는 듯 보인다. 하지만 통계는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의미다.
언어학자이자 독서 연구자인 나오미 배런의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역설에서 출발한다. 원제는 ‘How We Read Now’로, 직역하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읽는가’다. 저자는 사람들이 단순히 책을 덜 읽는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 자체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 고유의 읽기 행위마저 기계에 위탁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속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영상 콘텐츠, AI가 제공하는 요약문 등 방대한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질문만 입력하면 AI가 핵심 내용을 정리해주고 결론까지 제시한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이상적인 환경이다.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개념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다. 이는 인간이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가능한 한 적게 생각하려는 본능을 뜻한다. AI는 이러한 성향을 더욱 강화한다. 긴 문서를 읽고 분석하는 대신 AI가 제공하는 요약본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읽기 능력이 한 번 습득하면 평생 유지되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전거 타기와 달리 읽기는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유지된다. AI에 지나치게 의존할수록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근육을 잃게 된다. 저자는 이를 ‘인지 빈곤’의 시작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현대인의 독서 습관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기사 전체보다 제목을 먼저 소비하고, 책보다 요약 영상에 익숙하다. SNS에서는 몇 줄의 짧은 문장과 1분 남짓한 영상이 긴 텍스트를 대체한다. 정보량은 늘어났지만 집중력과 깊이 있는 독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저자는 종이책과 디지털 읽기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많은 사람은 매체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고 생각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종이책은 독자가 텍스트를 공간적으로 기억하도록 돕는다. 특정 문장이 책의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왼쪽 페이지였는지 오른쪽 페이지였는지까지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디지털 화면에서는 텍스트가 스크롤을 따라 흘러가면서 이러한 공간적 기억이 약화된다.
집중력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종이책은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알림과 링크, 광고 등으로 끊임없이 주의를 분산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기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책과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접근성과 편의성은 분명한 장점이다. 문제는 편리함을 얻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책이 단순한 독서론을 넘어서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읽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 있다. 저자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읽고 생각하는 시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과 사회 문제는 본질적으로 복잡하며, 이를 이해하려면 긴 글을 읽고 다양한 관점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복잡한 논의를 기피하고 짧은 요약과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의존하게 되면 공론장은 감정과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확산 역시 이러한 읽기 능력의 약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깊이 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의식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종이와 디지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목적에 맞는 읽기 방식을 구분하는 일이다. 빠른 정보 탐색에는 디지털이 유용하지만, 이해와 성찰을 위해서는 집중적인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은 읽기의 위기가 곧 사고의 위기이며,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이 끝까지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왜 중요한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시의적절한 교양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