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 막기에 급급 슈팅도 밀려… ‘손’ 놓고 무너진 홍명보 [2026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 0-1 졸전… ‘자력 32강’ 실패

전반 오현규 원톱 이강인·황희찬 2선
‘약체’ 남아공 펄펄 나는데 韓은 느려
손흥민 투입도 흐름 못 바꿔 골 허용
수비 핵심 김민재 교체… 의아한 용병술

멕시코가 체코 잡아준 덕 3위는 지켜
홍 “모든 게 제 책임” 전술 실패 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은 “두세 포지션에 변화를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모든 관심은 손흥민을 원톱 스트라이커에서 왼쪽 윙포워드로 이동시키느냐에 쏠렸다. 그러나 홍 감독의 선택은 포지션 이동이 아닌 손흥민의 선발 명단 제외였다. 이런 홍 감독의 파격은 결국 자충수가 됐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로 ‘캡틴’까지 맡고 있는 손흥민을 베스트11에서 빼는 파격은 ‘승부수’가 아니라 패착이 되고 말았다. 승리도 필요 없이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를 확정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경기 종료 순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오른쪽)이 25일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경기에서 0-1로 패한 뒤 황인범을 끌어안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25일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며 패배가 확정되자 아쉬워하는 모습. 몬테레이=뉴시스·뉴스1

비기는 게 아니라 이겨서 승리를 확정짓겠다는 홍 감독의 의도는 공격진 변화에서 읽혔다. 손흥민과 공격 2선에서 뛰던 이재성을 뺀 대신 오현규를 원톱으로 세우고 황희찬이 측면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공격진에서 가장 폼이 좋았던 이강인을 그 뒤에 배치해 사실상 프리롤로 모든 공격의 물꼬를 트게 하는 전술이었다.

홍 감독의 의도는 좋았지만, 선수들의 몸놀림은 너무나 무거웠다. 홍명보호 공격의 시발점인 이강인도 앞선 체코-멕시코전에서와 달리 패스의 질이나 탈압박 능력이 떨어졌다. 이강인의 발밑에서 나오는 패스가 그리 좋지 못하다 보니 오현규와 황희찬은 전방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선수도 상대 수비를 제대로 뚫어내지 못하는 등 폼 자체도 그리 좋지 못했다.



홍 감독이 구사하는 스리백 전술의 핵심은 미드필더로 분류되지만 수비와 공격에서 모두 기여해줘야 하는 윙백 포지션이다. 기왕 공격적으로 나갈 거라면 공격력이 좋은 엄지성이나 옌스 카스트로프 등의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지만, 홍 감독의 선택은 공수 밸런스에 방점이 찍히는 이태석과 설영우 카드였다. 둘은 부정확한 크로스와 불안정한 퍼스트 터치 등으로 번번이 경기 흐름을 끊는 모습이었다.

결국 홍 감독은 전반전이 끝난 뒤 황희찬, 이태석, 백승호를 불러들이고 손흥민, 카스트로프, 김진규를 투입하며 자신의 용병술이 실패였음을 자인했다. 그러나 이미 전반전에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하며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과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남아공을 누르기엔 부족했다. 결국 후반 18분 남아공의 날카로운 역습 한 방에 수비진이 와르르 무너졌고, 체팡 모레미가 왼쪽에서 넘긴 땅볼 크로스를 타펠로 마세코가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한국의 골문 오른쪽에 꽂으면서 승기를 완벽하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에도 홍 감독은 이해할 수 없는 용병술을 보였다. 후반 20분 수비의 핵심인 김민재를 뺐다. 종아리 통증이 이유였다. 그럴 수 있으나 교체 대상으로 선택한 게 문제였다. 추격을 위해선 수비 전술을 포백으로 바꿔 센터백을 둘로 줄이고 공격 자원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져야 했지만, 홍 감독의 선택은 또다시 같은 포지션 1대1 교체였다. 후반 30분이 돼서야 경기 내내 부진하던 오현규 대신 조규성을 투입해 공격 변화를 꾀했지만, 이미 패색이 짙어진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백약이 무효했다.

홍명보호가 ‘1승 제물’이라던 상대에게 또다시 ‘쇼크’를 당한 모습은 12년 전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데자뷔다. 12년 전 알제리에 당한 2-4 대패는 지금도 ‘알제리 쇼크’로 회자되고 있다. 이번 역시 A조 최약체라던 남아공에 0-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는 이른바 ‘남아공 쇼크’로 32강 진출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이런 큰 무대에서 결과는 모든 게 감독의 책임”이라며 “제가 판단하고 결정했다. 제 판단이 잘못 됐으니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고 모든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손흥민의 선발 제외에 대해선 “손흥민은 상대가 힘이 있는 전반보다 45분을 마치고 공간이 좀 생겼을 때 넣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몸놀림이 무거웠던 것을 두고 ‘집단 식중독 등의 불가항력적인 요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이유를 그런 쪽에 돌리고 싶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