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망친다며 아메리카노 끊더니…”
직장인 김모(39) 씨는 얼마 전부터 아침 빈속에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끊었다. 소셜미디어에서 “공복 커피가 간을 망친다”는 영상을 본 뒤였다.
커피를 끊었다며 당 든 과일음료로 속을 채운다. 야근이 끝나면 배달 앱부터 켠다. 커피만 끊었지, 간을 괴롭히는 습관은 그대로다.
공복 커피처럼 근거가 약한 위험에는 예민하면서, 정작 술이나 단 음료, 야식, 약 중복 복용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억울한 공복 커피?…정작 불편한 곳은 ‘위장’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위산과 담즙이 한꺼번에 쏟아져 간세포가 망가진다는 말이 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담즙이 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빈속에 마신 커피가 담즙 분비를 거쳐 간을 망가뜨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유럽간학회와 유럽당뇨병학회, 유럽비만학회가 2024년 함께 펴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진료지침에는 커피 섭취가 간 손상 및 간 관련 임상 결과 개선과 연관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복 커피로 불편해지는 곳은 간보다 위와 식도다. 커피가 속쓰림이나 위산 역류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빈속에 마실 때마다 속이 쓰리거나 신물이 올라온다면 식후로 시간을 옮기거나 양을 줄이면 된다.
아메리카노보다 살펴야 할 건 설탕과 시럽, 휘핑크림이다. 이런 재료가 많이 들어가면 커피 한 잔도 당류와 열량이 높은 음료가 된다.
◆늦은 밤 야식…‘간 해독 시간’ 아닌 과식이 문제
“간은 밤에 해독하니 야식을 먹으면 간이 쉴 수 없다”는 말도 맞지 않다. 간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 영양소를 대사하고 약물을 분해하고 담즙을 만드는 일은 밤낮없이 이어진다.
야식이 문제인 건 간의 해독 시간을 빼앗아서가 아니다. 늦은 시간의 잦은 과식과 불규칙한 식사, 하루 필요량을 넘는 열량이 간에 부담을 준다.
치킨이나 피자, 라면, 빵처럼 지방과 정제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밤마다 먹으면 하루 섭취 열량이 쉽게 불어난다. 활동량까지 적으면 남은 에너지가 체지방으로 저장되고, 간에 쌓이는 지방도 늘어난다.
2025년 성인 3만2030명을 분석한 관찰연구에서도 늦은 밤 간식을 먹는 습관은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위험 증가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관찰연구인 만큼 늦은 식사가 지방간을 직접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물 대신 마시는 탄산음료와 가당 커피, 과일맛 음료도 마찬가지다. 단 음료는 씹는 과정 없이 빠르게 넘기는 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당류와 열량을 들이켜기 쉽다.
음료에 든 과당은 주로 간에서 대사된다. 가당 음료로 과잉 열량 섭취가 이어지면 간의 지방 합성과 중성지방 증가에 영향을 준다.
2024년 유럽 진료지침도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있는 성인에게 당류와 포화지방이 많은 초가공식품을 줄이고 가당 음료를 피하라고 권고했다.
지방간은 먹는 양과 체중, 음주, 운동 습관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갈증이 날 때는 물부터 찾고, 단 음료는 마시는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게 우선이다.
◆감기약 먹고 진통제까지…같은 성분 겹치면 간에 부담
두통이나 몸살 기운에 흔히 찾는 아세트아미노펜도 정해진 용법과 용량을 지켜야 한다. 특히 조심할 건 같은 성분의 약을 겹쳐 먹는 경우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진통제뿐 아니라 일부 종합감기약과 두통약에도 들어 있다. 상품명이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 먹다 보면 모르는 사이 하루 총량을 넘기기 쉽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허가사항은 아세트아미노펜의 하루 총량을 400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를 넘기면 간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제품 이름보다 성분명과 함량, 하루 복용 횟수를 먼저 봐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4000㎎까지 채워 먹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제품마다 한 알에 든 함량도, 복용 간격도 다르니 설명서대로 먹어야 한다. 간질환이 있거나 술을 자주 마신다면, 약을 먹기 전에 의사나 약사에게 물어보는 게 안전하다.
진통제라고 부작용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이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간보다 위장관 출혈과 신장 기능 저하를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진통제를 싸잡아 ‘간에 나쁜 약’으로 모는 것도 맞지 않다.
◆“하루 한 잔뿐인데”…매일 마시면 간에 부담 쌓인다
술은 한 번에 마시는 양과 횟수, 음주 기간이 모두 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소량이니 매일 괜찮다”거나 “주말에만 몰아 마신다”는 식으로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알코올은 대부분 간에서 분해된다. 이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가 간세포를 손상시키고 염증을 일으킨다. 과음이 이어지면 간에 지방이 쌓이고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커진다.
“매일 마시면 간이 정해진 만큼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도 맞지 않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간 회복 시간’ 같은 것은 의학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매일 마시는 습관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술이 일상으로 굳고 마신 양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반주 한 잔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두세 잔이 되고, 술 없는 저녁이 어색해진다.
간을 지키겠다고 공복 커피부터 끊을 이유는 없다.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셨다고 간이 바로 상하지는 않는다. 속이 쓰리거나 신물이 올라온다면 마시는 시간을 식후로 옮기면 된다.
정작 챙겨야 할 건 밤마다 이어지는 야식과 단 음료, 성분도 모르고 겹쳐 먹는 약, 습관처럼 굳어버린 음주다. 커피 한 잔 끊었다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 뭘 얼마나 먹고 마셨는지, 같은 성분 약을 겹쳐 먹진 않았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