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최태원” 했던 구미, 이번엔 “1000원 부지”…반도체 유치 잔혹사 끊어낼까

“투자 유치를 위해 부지를 평당 1000원 수준에 공급하는 방안 등 지원책을 검토하겠습니다.”

 

김장호 구미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산업 용지를 평당 1000원에 공급하는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사실상 무료로 땅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호남 지역 반도체 투자 유치와 관련해 경기 용인과 전남, 경북, 대구 등 소외론을 주장하는 각 지역 중 유독 구미의 이같은 주장이 주목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구미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2019년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고배를 마셨다. 구미가 과거 ‘반도체 유치 잔혹사’를 끊어내고 완전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성공하기 위해선 숙련된 석 박사급 연구개발(R&D) 인력을 위한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장호 구미시장이 25일 구미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팹(FAB·생산시설) 유치를 위해 산업 용지를 평당 1000원에 공급하는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시장은 25일 구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최적의 입지”라며 “투자 유치를 위해 구미국가산업단지 5단지 2단계 부지를 평당 1000원 수준에 공급하는 방안까지 포함한 전례 없는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산업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경쟁력과 산업적 효율성”이라고 덧붙였다.

 

김 시장은 구미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전력·용수·산업부지 등 핵심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팹 유치를 위해 투자기업에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인센티브와 행정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1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희망하는 경북 구미시민이 종이학 42만개(당시 구미시 인구수) 접기 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미가 이토록 간절하게 반도체, 그것도 전후 공정을 포함한 종합 반도체 제조공장 유치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구미시는 비수도권 유일의 반도체 특화단지다. 정확히 말하면 구미시는 2023년 정부로부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단지로 지정받았다. 그결과 SK실트론과 LG이노텍 등 300여개가 넘는 반도체 관련 소부장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며 나름의 생태계를 다져온 상황이다. 즉 과거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중심이던 구미산단은 최근 반도체 소부장과 방위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구미가 반도체 전공정 및 후공정 팹 유치에 뛰어든데는 반도체 산업의 완결형 생태계를 위해선 종합 반도체 제조 공장이 반드시 들어와야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물론 구미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온다는 생각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반도체 생산의 핵심 중 하나인 전력 측면에서 구미시는 전국 전력자립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구미시의 전력자립도는 228%로 현재 유지 중인 구미산단과 구미시 인구가 2배로 들어나도 충분히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여기에 낙동강 수계를 기반으로 대규모 취수가 가능하다. 물류의 경우 앞으로 개항 예정된 대구·경북 신공항이 10㎞ 이내 위치에 글로벌 고객사 배송에도 유리한 상황이다.

 

이같은 구미의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는 2019년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구미가 아닌 경기 용인을 선택했다. 당시 정부는 민간투자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 특화 산업단지 조성에 돌입했다.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가 투자를 주도하고, 50여개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2019년1월 경북시장군수협의회 3차 정기회의에서 참석자들이 “SK하이닉스의 구미 투자를 원한다”며 화이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입지였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유치 경쟁을 시작했다. 수도권에서는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이천과 서울에서 가까운 용인이 거론됐다. 지방에서는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그리고 경북 구미가 출사표를 던졌다.

 

구미시는 SK하이닉스를 설득하기 위해 몇 가지 유인책을 내걸었다. 10년간 용지 30만평 무상 임대, 보상이 끝난 2차 조성 원형지(조성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개발자가 자유롭게 건축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토지) 70만평 제공, 직원 사택·수영장·체육시설 공급이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세용 구미시장이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국회를 돌며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건의했다. 장 시장은 민주당 계열 정당이 배출한 첫 구미시장었다. 시민들은 영하권 날씨에 야외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감행했고, ‘I♡최태원(SK그룹 회장)’ 팻말을 들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유는 개발과 첨단 공정을 관리하는 인력 수급이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미세 공정과 AI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고숙련 석·박사급 연구개발(R&D) 인재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에 수도권인 용인을 선택했다. 대기업과 반도체 연구 인력들이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가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인프라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현실적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2019년1월 경북 구미 시내 곳곳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염원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연합뉴스

당시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조성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SPC)는 국내외 우수인재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대·중소기업 협력 생태계 조성 용이, 반도체 기업 사업장(이천·청주·기흥·화성·평택)과의 연계, 전력·용수·도로 등 인프라 구축 용이 등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즉 사람이 문제였다. 반도체 산업은 숙련된 고급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수, 도로 등 하드웨어의 경우 투자를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숙련된 석박사급 R&D 인력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교육과 문화 인프라를 이유로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며 “빅테크와의 인력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펩이 수도권을 벗어나는 데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