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광역시와 전남 장성 일대에 수백조 원을 투입해 최첨단 반도체 ‘전공정 팹(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이를 둘러싼 여야 간의 거친 공방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호남권으로 확장되는 역사적 대전환을 두고 지역 국회의원은 “호남의 압도적 입지 경쟁력에 따른 기업의 경제적 판단”이라며 전면 옹호에 나섰다.
26일 정부와 정치권,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광주연구개발특구 첨단3지구를 새로운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낙점하고 세부 인프라 지원 방안을 정부와 막바지 조율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전남 장성을 유력 후보지로 확정하고, 글로벌 고객사 수요와 매칭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저울질하며 국내외 최종 투자 공조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재계에서는 후공정(패키징) 공장 위주의 수조 원대 투자가 관측됐으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독대한 데 이어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결단을 강력히 요청하면서 전공정 팹 유치로 판이 완전히 커졌다. 반도체 팹 1기 건설에 평균 60조 원 안팎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양사의 호남권 합산 총투자 규모는 4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투자를 고리로 ‘5극3특’(5개 초광역권·3개 특별자치도)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연계한 남부권 반도체 벨트 구축에 속도를 낸다.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안이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야당 일각에서 이번 초대형 투자를 두고 ‘지방선거용 정치공학’, ‘정부의 압박에 의한 관치 경제’라며 파상 공세를 퍼붓자 여당 지휘부는 일제히 반박 전선을 구축했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원내부대표(광주 동남을)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광주·전남 지역이 새로운 반도체 투자 후보지로 검토되는 것은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경제적 판단의 결과”라며 “정부의 팔 비틀기가 아닌 기업의 자발적, 경제적 판단”이라고 전면 정리에 나섰다.
안 원내부대표는 호남이 반도체 생산시설 후보지로 거론되는 배경에 대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과 풍부한 산업 용수, 넓은 산업 용지와 미래 확장성 등 기업이 중요하게 고려하는 실질적 입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은 기업의 철저한 사업성 분석과 수익성 검토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정부가 기업의 의사결정을 강요하거나 좌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특히 “국민의힘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자발적인 투자 결정마저 정쟁의 소재로 삼으며 근거 없는 비판과 지역 갈등 조장에 몰두하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는 정쟁을 즉각 중단하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 삼전이 낙점한 광주 첨단3지구는 국가 AI 데이터센터 등 인공지능 인프라가, 하이닉스가 검토 중인 전남 장성은 풍부한 태양광·풍력 등 RE100 전력망이 사통팔달로 연계돼 있어 입지적 메리트가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최종 결실을 보기까지는 영산강·섬진강의 초순수 용수 공백 해결, 석·박사급 R&D 연구 인력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 타파, 인천국제공항까지의 막대한 항공 물류비 부담 리스크 그리고 기존에 전공정 투자가 예정돼 있던 경기 용인시 등 수도권 지자체와의 역차별 갈등 조율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30일 전남광주통합시 출범 행사에 맞춰 광주에서 직접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이재용 회장이 다음 달 2일 건설 계획을 공개하는 시점이 이번 대규모 투자안의 실현 가능성과 인프라 조기 구축 여부를 가늠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