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트로트의 고향이다/이동순/민속원/2만9000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전쟁 직후 피란민들의 삶과 이산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는 가사는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부산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오늘날 영도대교 인근에 현인 동상과 노래비가 세워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부산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희망이 교차한 공간이자, 수많은 대중가요의 무대였다.
시인이자 가요평론가 이동순이 최근 펴낸 ‘부산은 트로트의 고향이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부산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트로트의 중심지이자 실질적인 발상지라고 주장한다. 책은 그가 일간지에 장기간 연재한 부산 가요 이야기를 한데 묶은 것으로, 부산과 한국 대중가요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부산항의 역사는 600년이 넘는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 동원과 인력 수탈로 고향을 떠나는 이들의 눈물이 서린 곳이었고, 식민지 수탈의 물자가 일본으로 실려 나가던 출발점이었다. 6·25전쟁 때는 미국의 군수물자가 들어오는 관문이었으며,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을 품은 삶의 터전이었다. 1960~70년대에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되는 병사들과 가족들의 이별이 이어졌고, 브라질 등 해외로 떠나는 이민자들이 마지막으로 조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곳이기도 했다.
이같이 이별과 만남, 그리움과 희망, 고향과 타향의 감정이 응축된 곳이었던 만큼 트로트가 지닌 한(恨)과 향수, 애환의 정서가 더욱 짙게 형성됐다는 것. 저자는 그 근거로 1935년 발표된 ‘부산노래’를 제시한다. 가수 이은파와 고복수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는 역사상 최초의 ‘부산노래’로 기록된다. “현해탄 안개 속에 연락선 뜨고 / 오륙도 물결 따라 갈매기 난다 / 에헤요 에헤요 데헤야 / 조선의 문호 부산이로구나.”
1935년의 부산은 이미 조선의 관문이자 청춘의 도시로 노래되고 있었다. 이후 부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저자는 부산을 소재로 하거나 부산을 중심 무대로 삼은 노래가 1000곡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 대중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명곡들이 즐비하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은 부산이라는 공간을 넘어 한국인의 집단 기억을 담은 노래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부산을 ‘트로트의 고향’, ‘트로트의 발상지’로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부산이 해야 할 문화적 과제로 “부산을 대표하는 민족의 노래 한 곡을 선정해 부산역 광장에 기념 노래비를 세우는 일”이라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