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또 묶였다… 한전·가스공사 재정난 ‘빨간불’

올해 하반기 전기∙가스요금이 또 동결된다. 소비자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막대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상황이 자칫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6일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이같이 밝혔다.

 

구 부총리는 “전기·가스요금 등 주요 공공요금을 하반기에도 동결하고, 액화석유가스(LPG) 부탄 판매부과금은 연말까지 한시 면제하겠다”고 말했다. 

 

26일 구 부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역대급 무더위 예고, 요금 동결 속 한전의 적자 우려

 

이번 정부의 전기요금 동결은 가정용의 경우 13개 분기 연속, 산업용의 경우 7분기 연속 동결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동결한 배경은 고물가에 따른 서민 부담을 우려한 것도 있지만, 한전의 재정상태가 어느 정도 개선된 것도 있다. 실제로 한전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실적은 전년 동기대비 0.7%, 0.8% 증가한 매출액 24조3985억원, 영업이익 3조7842억원을 기록했다.

 

한전의 이 같은 실적 개선은 그동안 실시한 대대적인 재정 건전화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부채와 차입금이 206조원, 128조원에 달하고 하루 이자비용으로만 114억원을 부담하는 실정이다. 2021~2023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누적 엉업적자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부채 해결을 위해선 전기요금을 인상해 마진을 개선해야 하는데, 올해 여름철을 비롯해 연말까지 전기요금 인상이 무산된 만큼 당분간 막대한 이자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여름철은 유난히 더 무더워 전력수요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적자 규모가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어 우려된다.

 

2023년 2월14일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도시가스 계량기가 설치돼있다. 뉴시스

◆여전한 13조 미수금…연말 ‘겨울철 가스 대란’ 우려 없나

 

가스요금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6차례 인상된 이후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요금 동결 장기화 속에서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바로 가스공사의 미수금이다. 이중 발전용 미수금은 회수가 완료됐고 도시가스용 중 상업용 미수금은 대부분 회수된 상황이지만 도시가스용 민수용 미수금이 많아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세 덕분에 민수용 미수금 역시 1분기 말 기준 13조3717억 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말(13조8649억 원)보다 4932억 원 줄었지만,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민수금은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물가 안정을 위해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민수용 가스를 공급하면서 공사가 떠안게 된 미회수 대금, 그야말로 ‘장부상 외상값’이다. 미수금을 근본적으로 털어내려면 가스요금 현실화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올해 겨울철이 포함된 연말까지 동결 기조가 유지될 경우, 향후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미수금 규모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4년 8월27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전 협력업체에서 관계자가 8월분 전기요금 고지서 발송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딜레마, 결국 ‘민생 안정’에 방점

 

정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요금을 올리자니 물가 상승과 서민 부담이 걱정되고, 요금을 동결하자니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고심 끝에 “물가 안정’을 선택했다. 이는 중동전쟁 이후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구 부총리는 “민생경제 안정과 회복에 총력을 다하는 한편, 중동전쟁 이후의 경제 정상화와 재도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비상대응 조치를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공기업의 재정 상태를 보면 요금 인상이 꼭 필요하지만,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하다 보니 인상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라며 “다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도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이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한전과 가스공사는 상장사인 만큼 국민이 곧 주주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물가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기업 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세수 등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